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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재병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8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05 - 22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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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경, 백제와 왜 사이 해상 교류를 시사하는 결정적인 고고학적 자료는 죽막동 제사유적에서 출토된 왜 양식 석제 모조품들이다. 이 석제 모조품들은 죽막동 제사에 왜 관리․상인들의 참석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죽막동 제사유적에서 보이는 이러한 정황은 5~6세기경, 백제와 왜 사이에 정치․경제적 연대 강화를 위한 새로운 외교적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죽막동 제사유적이 백제 중앙이 관여한 국가적 제의 장소였다는 점은 백제 중앙 양식의 최상급 헌공품의 존재로부터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4세기경, 백제 서해안 항로 상의 교역선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죽막동 제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5세기 후엽경, 서울지역 백제 수도가 함락되고 공주로 천도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죽막동 제사에서는 기능의 변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국가의 안정을 기원하는 제사 기능이 새롭게 추가․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키노시마 제사유적도 교역선의 안전 항행을 기원하는 왜의 국가적인 해안 제사유적이었다. 그런데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은 현해탄 항로의 메인 루트에서 조금 떨어진 무인도에 형성된 제사유적이라는 독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오키노시마 섬은 왜 교역선의 일상적인 휴식․물자보급과 교역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제사유적은 5~6세기경 백제와 왜 사이 해상 교류의 실체를 입증하는 대규모 해안 제사유적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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