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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우재병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1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313 - 34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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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엽경과 6세기 전엽경, 이 두 시기에 걸쳐 백제서남부지역 일부 수장묘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의 왜 양식 묘제가 각각 채용된다. 예를 들어, 5세기 후엽경 왜 양식 원통형토기 묘제 채용의 경우, 백제 중앙 양식 방분에 왜 양식 원통형토기가 장식되는 양상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6세기 전엽경이 되면 왜 양식 전방후원분에 왜 양식 원통형토기로 장식되는 사례가 등장하게 된다. 6세기 전엽경에 나타난 이러한 왜양식 묘제 채용 강화 양상은 무령왕 정권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 시기 백제의 친왜정책이 전 단계보다 일층 강화되었음을 시사하는 고고학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백제 서남부지역에서의 왜 양식 묘제 채용 과정에는 두 시기 사이에 차이점이 명료하게 관찰된다. 이들 두 시기에 걸친 고고학적 자료의 변화는 백제와 왜 사이 교류에 특별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5세기 후엽경 백제와 왜의 교류는 고구려에 의한 서울지역 수도 함락이라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백제에 의해 주도된 측면이 강하였다. 금관가야를 축으로 형성되었던 기존 광역교역시스템이 재편된 이후, 백제와의 교류 교역을 강화하려던 왜에게도 백제의 수도 함락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중국남조 백제와의 교류 강화를 통한 선진지식 전략물자의 안정적 수입을 위해서, 이 시기 왜는 위기상황 속의 백제와의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서남부지역 유력 수장묘에 왜 양식 원통형토기 묘제를 채용한 것은 백제와 왜와의 정치적 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묘제를 이용한 외교전략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세기 후엽경 백제와 왜 사이 교류의 고고학적 특질은 백제 무령왕정권과 왜 繼體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양국에서 강화된 친왜정책 친백제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국에서 거의 동시에 출현한 상대국 묘제 채용 강화 현상의 배경에는 양 왕권 사이의 개인적 친분이 작용한 측면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 무령왕은 친왜정책 뿐만 아니라 친중국남조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였다. 이점을 고려하면 무령왕정권에 의한 이러한 정책 추진 배경에는 개인적 친분보다는 정책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다. 한편 이 시기 왜 繼體정권에 의한 문화적인 친백제정책의 시행은 왜와 중국남조 백제와의 정치적 연대를 강화하여 권력 내부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신정권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백제 내 왜 양식 묘제 출현의 시기 차
3. 묘제에 보이는 무령왕 이전과 이후의 백제와 왜 사이 교류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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