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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민호 (숭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71 - 21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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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 1919년 3월 7일부터 7월말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게재된 3ㆍ1운동 관련 기사 가운데 일제 관헌과 친일인물들이 참여한 기획기사와 3ㆍ1운동 상황에 대한 기회 취재기사의 내용을 분석하여 3ㆍ1운동에 대한 『매일신보』의 보도경향과 일제와 관변세력의 친일논리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3ㆍ1운동이 발발하자 『매일신보』에서는 다양 친일 관변 인물의 논설과 총독부 관리들의 담화 및 총독과 지방장관의 유고를 보도하면서 운동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크게 보면 이 내용들은 조선 민중이 천황과 총독의 善政을 망각하고 소요를 일으켰으며, 조선은 역사적으로 보나 국민의식으로 보아도 독립할만한 능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민족자결주의는 유럽의 전란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것에 불과하며, 미국이나 영국 등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독립시키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의 독립을 승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총독부 경무당국 및 일본육군성 등은 3ㆍ1운동 초기부터 강경진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었으며, 4월 초에 일본으로부터 대규모의 병력이 조선에 상륙하면서 진압은 더욱 가혹해 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시위 현장은 민중들은 헌병경찰이 오는 그림자만 보아도 곧 도망하여 버리는 상태의 공포분위기 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3ㆍ1운동의 상황에 대한 『매일신보』의 취재 기사의 경우는 크게 보아 전국의 시위가 진정되고 있다고 하거나 3ㆍ1운동으로 인해 천도교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사와 학생들의 등교를 권고하는 기사와 경찰이 소요를 진압하는 틈을 타 노름이 성행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게재되고 있었다. 이밖에 2ㆍ8독립선언으로 옥중에 있는 동경 유학생들이 반성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뉘우치고 있는 듯한 느낌의 보도를 게재하거나 파리강화회의에 조선인 대표단이 파견되었다는 것이 낭설인 것처럼 호도하는 기사들이 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들은 한글로 게재되어 일반 민중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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