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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민철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마한백제문화 마한백제문화 제3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59 - 19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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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실시된 고적조사사업의 원인,그리고 진행상황과 결과물을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II장에서는1915년까지의 익산 지역 고적조사를 세 가지의 흐름으로 정리하였다. 첫째,1910년세키노 다다시의 고적조사로 인해 지역 문화유산이 활자화되어 알려졌다. 당시 익산에서 발견한 10개소의 문화유산 가운데 광복 이전까지 보물·고적으로 지정된 것이 7건으로 세키노의 조사가 이후 문화재 지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둘째,1915년 도리이 류조의 사료조사에서는 익산 내 지석묘와 석검 등을 발견하며 지역 최초의 선사시대 조사 내용을 확인하였다. 셋째,1910년 조사로 인해 실시된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공사 정황과 결과, 소요 경비를 확인하고 나아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보존공사 소요 경비와 비교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익산 지역에서 문화유산과 관련한 가장 다양하고 활동적인 사업들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Ⅲ장에서는 1916년 설립된 고적조사위원회에 의한 본격적 고적조사 속 익산과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에 따른 문화유산 지정·보존을 두 가지의 흐름으로 정리하였다. 첫째,1910년의 조사를 바탕으로 1917년 쌍릉 및 익산 소재 유적에 대한 세부 현황조사가 진행되었다. 야쓰이 세이이쓰가 발굴한 쌍릉의 연구결과는 당시 마한 무덤으로 불리던 쌍릉읕 삼국시대 백제 고분으로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지만 발굴 과정과 사후 대처에는 다소 모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둘째, 「보존규칙」, 「보존조치」, 「삼림법」, 「국유림구분조사사업」등 지정·보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익산의 문화유산 현황을 파악하였다. 결론적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분야룰 막론하고 조사자들이 얻어낸 다양한 정보는 일본 본토로 전달되었다. 사실상 '조사’라는 단어는 원활한 식민지 통치를 위한 역사 왜곡의 다른 이름이며, 그들이 제출한 보고서들은 일본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기 위한 지식 권력의 산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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