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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정훈 (초당대학교)
저널정보
택민국학연구원 국학연구론총 국학연구론총 제18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33 - 253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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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405년(광개토왕 14년)부터 407년(광개토왕 16년) 무렵 까지 고구려의 동향을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살펴본 것이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어느 한 세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407년에 북중국의 강자인 北魏는 주군인 拓跋珪의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내정이 불안했다. 한편 고구려와 국경을 접한 後燕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北燕으로 왕조가 교체되었다. 이러한 북중국에서의 정세 불안은 고구려가 서방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한반도 방향으로 진출하는 배경이 되었다. 같은 해인 407년에, 高句麗는 한반도 남쪽으로 진출해, 百濟에 대한 공격을 성공시켰다. 한반도에서 新羅는 고구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결국 고구려는 한반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구려가 독자적인 세력권을 가질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광개토왕 재위기에 일체의 반란이나 민생의 불안이 보여 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두 번째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한 후연(북연)과 백제가 약체화된 데에 있었다. 세 번째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어느 한 나라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채, 여러 나라가 견제와 공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광개토왕은 내부의 안정 속에서, 국제적인 정세가 고구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대외적인 팽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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