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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도현철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0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3 - 65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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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성리학과 불교의 상호 인식을 통하여 한국중세 종교 사상의 정치사회적 기능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려는 것이 본고의 과제였다. 고려말 성리학을 수용한 유학자들은 불교와 유교의 이치와 지향이 같다는 유불동도론을 전개했다. 그리고 삼교일리론를 통하여 유불도 삼교가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색은 불교적 효행이나 유교적 효행 모두 효행(孝行)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기화(己和)는 승려의 출가가 효의 상도에는 어긋나는 것일지 모르나 오히려 권도를 취해 극진한 효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유교와 불교의 윤리 기능은 평화롭고 행복한 인간의 삶을 지향하여, 마음의 안정과 이를 통한 가족, 사회, 국가의 안정 도모를 기약할 수 있다. 한편 성리학에 충실한 정도전 등은 유학을 정통, 정학으로 보고 불교를 이단을 정학에 대한 이단으로 보았고, 유교의 삼강오륜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조선건국후 성리학을 국시로 정해지자 불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이어졌다. 하지만, 조선은 재편된 지배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불교적 요소는 용인하였고 오히려 활용하였다. 태조는 승려를 왕사와 국사를 임명하였고, 내불당을 두었다. 왕실에서는 사후(死後) 명복(冥福)의 기원이나 천변지개(天變地災), 질병(疾病) 등 인간적 재난을 소재(消災)하려는 불교식 기복적 의례가 행해졌다. 언문 불교 경전도 간행되었고, 승려를 부역 노동에 동원하였다. 성리학의 불교비판은 왕조 창업자 입장에서 체제이념 혹은 정치사상으로서의 견해이며, 일반 사대부의 의식이나 민간에서 심지어 왕실에서는 여전히 불교와 도교‧민간 신앙이 지배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억불의 대상이 된 불교는 엘리트 불교에 한정된 것이고, 서민적인 불교는 민간신앙으로 기층사회에 남아 그 명맥을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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