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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양진 (경희대학교) 신상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30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81 - 440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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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대 만주어가 어떠한 양상으로 조선에 수용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조선에서의 滿洲語(淸語) 수용 과정과 그 실상을 살펴보고, 이러한 실상이 조선 지식인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자기화 하여 받아들여졌는지를 알아보았다. 조선의 만주어에 대한 초기의 인식은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으면서 만주족과의 교류를 통하여 시작되었다. 당시에 만주족은 기존의 여진문자를 버리고 새로 도입한 有圈點 만주문자로 만주어를 표기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점차 만주어 이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司譯院을 중심으로 교육 체제를 갖추고, 만주어 구사자를 확산시켜 나갔다. 그리고 만주어 확산을 위해 만주어 학습서를 편찬하여 간행하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은 申繼黯이었으며, 그가 편찬한 만주어 학습서는 그 뒤에 개정을 거듭하여 『八歲兒』․『小兒論』․『三譯總解』․『淸語老乞大』로 이루어진 <淸學四書>로도 불리는 『淸語總解』(1703)로 발전하게 되며, 조선말까지 만주어 학습서의 근간을 이룬다. 한편 청나라는 만주어의 문화어 격상과 보급을 위해 『御製淸文鑑』이라고 불리우는 백과사전식 만주어 사전인 Han i araha manju gisun i buleku bithe(HMB, 1708)를 간행하게 되고, 乾隆 36년(1771)에 이르러서는 증보판인 『御製增訂淸文鑑』이 편찬된다. 조선에서는 淸學檢察官 金振夏 등이 『어제증정청문감』을 저본으로 한문과 한글로 뜻을 달고 한글로 만주어 발음을 표기하여 『漢淸文鑑』(1779)을 간행하게 된다. 이후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만주어에 대한 표준은 『한청문감』을 통해 제시되었다. 그리고 조선후기 지식인들은 이렇게 편찬된 『한청문감』을 통하여 청나라의 지식체계를 수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만주어로 기록된 백과사전식 지식체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 星湖 李瀷을 비롯하여 靑莊館 李德懋, 茶山 丁若鏞, 李圭景 등이다. 이들은 『한청문감』과 『어제증정청문감』의 만주어 지식 내용을 인용하여 새로운 만주어휘를 비롯하여 物名, 人名, 度量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고증 작업에 활용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은 내적 논리는 명나라에 대한 명분론이 앞섰으나, 그 실제에 있어서는 청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재편에 빠르게 흡수되어 갔음을 청대 만주어의 수용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역원을 중심으로 한 만주어 通事 및 만주어 구사자 양성, 만주어 학습서인 『청어총해』(1703)와 『한청문감』(1779)의 간행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HMB(1708)와 『어제증정청문감』(1771)의 출간과 맞물리면서 청나라의 만주어 규범화 정책 및 확산 정책이 조선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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