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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무용교육학회 한국무용교육학회지 한국무용교육학회지 제26권 제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51 - 167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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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이라는 조직은 한국근대무용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축을 형성 해왔다. 한국권번은 제도적으로 일본권번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전제하지만 일본 권번의 실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 다. 본고는 일본유곽에서 유녀의 색色과 기예技藝의 분리과정, 더불어 오도 리코(踊り子), 게이코(芸子), 여자게이샤(女芸者), 남자게이샤(男芸者) 등 기예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군이 유곽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한국권번의 전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남녀게이샤를 단속하는 기관인 겐반(見番,券番)의 설 립과 제도적인 단속규칙을 통해 어떠한 형태의 운영이 에도 요시하라에서 이 루어졌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일본은 이미 무로마치시대에 제정문제와 사창단속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유녀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게이세이교쿠(傾城局)라는 관청이 생겼고, 그 후 집창제 형태인 유곽이 교토의 시마바라(1589), 에도의 요시와라(1612), 오사 카의 신마치(1629)가 생겨났다. 이때는 유녀단속을 위한 최초의 법령이라 할 수 있는 5개조항을 발포하였고 유곽에서의 기본적인 금지사항과 유지사항을 규율과도 같이 정하여 유곽 전반의 큰 지침으로 삼았다. 이 시기는 사창도 만연해 있었고 단속도 엄격히 하였는데, 검거되는 매음 부는 요시와라에 보내지고 형벌로 일정기간 유녀업을 시키는 단속풍습이 있 었다. 시중에 이미 먼저 생겨나 있던 오도리코는 기예로 객을 접대하며 은밀 히 매음도 행했는데, 때때로 검거당해 요시와라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유곽 에서 초기의 고급유녀의 기예는 상당한 것이었고, 귀족이나 상당지위의 유객 이 많았으나, 점차 부를 챙긴 도시상공인이 요시와라의 유객의 주류가 되어 감에 따라 유녀는 기예도 그들의 정서에 맞게 변화되어갔다. 고급유녀는 차 츰 기예와 멀어지고 그 대신 하급유녀 중 출중하거나 또는 계약이 끝난 유녀 들이 능력에 따라 기예전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에도 요사와라에서는 오도리코 보다 조금 늦게 게이코가 그리고 뒤이어 여 자게이샤가 등장한다. 이들 세 부류는 기예의 종류와 품격이 조금씩 달랐고, 생성 소멸은 있지만 같은 시기에 각기 활동하던 차별화된 전문예인으로 유녀 의 예능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남자게이샤의 경우는 유곽 밖에서 살며 유곽에서 자시키를 갖기도 하였는 데, 타이코모치(太鼓持), 또는 호간(幇間)이라 불리었다. 점차 유곽으로 이주해 살게 되면서 여자게이샤와 구별하기 위해 남자게이샤로 불리어졌다. 남자게 이샤는 배우들이 게이샤를 겸업을 하기도 하였고, 기예와 교양 있는 예능집 단으로 성장한다. 1778년 당시 요시와라에는 100명의 남녀게이샤를 정원으로 하고, 게이샤 를 거느리고 있는 영업자가 모든 수익을 얻는 구조였다. 당시 유곽은 공용 비용이 필요하였고 한편 남녀게이샤들의 풍기문란이 문제가 되던 시기였다. 大黒屋의 주인이 1779년 동업자들과 협의 끝에 겐반(見番)을 창설하고 본인은 종래의 일을 그만두고 권번의 취체역을 맡는다. 권번은 일종의 규율을 만들 어 게이샤들의 운영환경을 조직화했다. 모든 남녀게이샤는 권번을 통해야만 자시키에 나갈 수 있고, 게이샤 영업 권을 권번에서 교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권번에는 각자의 명찰을 달아두고 불려나간 게이샤는 명찰을 뒤집어 영업상황을 편리하게 관리하였다. 자시키 에서 유녀의 영역을 침범하는 음란한 행동을 엄격히 금지하였는데, 유녀는 이를 권번에 고소 할 수 있었고, 정도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도 내려졌다. 또 한 이전과 다르게 유곽 밖으로의 출입을 1일 두 명으로만 제한하고 의상이 나 장신구도 유녀에 비해 소박한 모습으로 제한했다. 자시키에 나갈 때는 3 명이 기본 한조를 이루고 유객은 1조 이상을 부를 수 있었다. 이 같은 규정의 배경에는 유녀의 영업보호와 게이샤의 풍기관리가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영업시간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기본 화대를 정했으며, 수입은 권번 과 게이샤측이 반반씩 나눈다. 기본 화대이외에 게이샤는 유객으로부터 팁 의 일종인 일정 봉사료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중 6할은 게이샤를 불러준 영업 자시키에 낸다. 권번의 수입은 공용자금으로서 유곽내의 각종 건설공사비 및 공공행사의 보조금이나 권번사무원 월급 등 유곽유지의 제반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권번주의 몫으로 남는다. 그 밖에 권번 사무인이 게이샤의 영업장 까지 마중배웅을 해주는 등 기본적인 사항을 규율화 하였다.이런 규율에도 남녀게이샤 사이에는 큰 차별이 있었는데, 남자게이샤는 권 번을 통하지 않아도 묵인해 주는 경우가 많았고, 권번과 수익을 나누는 부분 에 있어서도 여자게이샤의 7분의 1만 납입하는 등, 남자게이샤에게 월등히 유 리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에도 요시와라에서 처음 생겨난 권번제도는 유녀의 손님과 여자게이샤와 의 폐해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였고, 게이샤의 감시는 물론이고 영업 감찰권과 이익분배의 결정권을 권번이라는 기구로 집중시켜 총합적으로 관 리하였다. 그리고 유곽의 유지를 위한 공용의 사업을 대리로 관리하는 역할 도 담당했다. 동시에 게이샤와 영업자, 유객간의 원활한 관리시스템으로서의 기반을 만들었지만, 게이샤를 위한 것 이었다 기 보다는 유곽의 영업이익에 기반을 하여 고안된 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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