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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기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마한백제문화 마한백제문화 제25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41 - 16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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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금마저는 미륵사지 종합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등 백제시대의 많은 유적들이 발굴 조사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금마저 백제문화의 특징과 정체성,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회랑이 없는 금마저궁 안의 대관사는 궁장과 같이 6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권위적인 형태의 1원배례루식 가람배치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관은 왕을 의미하며, 현세 왕실의 번영을 위한 사찰로 이해된다. 그 뒤 만들어진 제석사는 일원중문식 가람배치로 과거세 국조신앙의례를 담당하는 사찰로, 의자왕 때 완성된 3원식의 미륵사지는 미래세 백제왕실과 국가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찰로 파악된다. 이러한 사찰의 경영은 백제왕권의 정통성을 보여주고, 왕실과 국가의 번영과 발전의 영속을 기원하고자 하는 삼세기원사찰로서 호국불교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백제의 금마저 건설은 다른 목적도 있겠으나, 아직까지 정치적 기능의 건물들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고대사회 국가경영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적 방식의 국가제의가 불교화 된 모습이 무왕 이후 백제시대 금마저의 정체성으로 생각된다. 곧 백제 왕실은 금마저의 건설을 통해 圓融과 統攝의 정신을 담아 인간의 평등과 평화와 번영의 영속이라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금마저의 사찰에서 찾아지는 독창적인 모습은 새로운 문화의 창조요, 삼국시대 건축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전통문화의 원류였으며,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을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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