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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종배 (동국대학교(서울))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31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0
수록면
23 - 5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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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에 의해 이루어진 유교 경서에 대한 한글 석의(釋義) 및 언해(諺解)에 담긴 교육사적 의의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퇴계와 율곡의 경서 석의 및 언해는 길게는 고대 삼국 시기부터 시작된 유교 경서에 대한 우리말 풀이의 완성에, 짧게는 성리학[주자학] 관점에서의 경서 해석의 표준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세종대(世宗代)에 우리의 문자인 한글이 만들어져 한문 원본에 대한 언해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조선 사회에서 언해의 최우선 영역은 유학의 경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 일찍부터 경서 언해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 왔다. 하지만 그 작업의 완성은 퇴계와 율곡의 경서 석의 및 언해를 거치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1588년(선조 22) 10월, 《사서삼경》의 언해를 최종 마무리한 것은 교정청의 여러 학자들이었지만 퇴계의 《사서삼경석의》와 율곡의 《사서석의》및 《사서언해》를 제쳐두고 교정청본[관본(官本)] 경서 언해의 등장을 논할 수는 없다. 퇴계와 율곡에 의해 경서 해석을 둘러싼 혼란과 오류가 정리되지 않았다면 교정청 학자들에 의한 경서 언해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퇴계와 율곡의 경서 석의 및 언해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일차적으로 경서 언해의 완성에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논문에서는 퇴계와 율곡의 경서 석의 및 언해에 담긴 교육사적 의의로 교육에서의 한글 활용의 확대, 식자층(識字層) 사이에서의 한글-한자 이중문해(二重文解)의 보편화, 경서 학습의 전반적 수준 향상 등을 꼽았다. 이와 더불어 특정 관점에 의한 경서 해석의 표준화가 초래할 수 있는 경전주의(經典主義)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도 잠시 논의하였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퇴계의 《사서삼경》석의
Ⅲ. 율곡의 《사서》석의와 언해
Ⅳ. 퇴계와 율곡의 경서 석의 및 언해의 교육사적 의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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