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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준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7호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95 - 12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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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貞 元年(805) 8월 憲宗이 즉위하자 같은 달 西川의 劉闢이 反亂을 일으켰다. 이는 무엇보다도 같은 해 正月 順宗이 즉위한 이래 藩鎭이 세력을 떨치고 吐蕃이 위협을 가한다는 危機感이 朝廷을 감싸고 있던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宰相 杜黃裳의 建言에 따라 이듬해인 元和 元年(806) 정월 憲宗이 전격적으로 劉闢 토벌을 명하여 9월에 평정하였다. 憲宗이 劉闢을 토벌하던 중인 元和 원년 閏6月 李師道가 平盧鎭을 承繼하였으나 憲宗은 한동안 대응을 미루었다. 그러자 李師道는 불안감을 느껴 兩稅를 바치고 鹽法을 준수하며 官員을 요청하겠다는 타협책을 제시하였고 헌종이 이를 수용하여 8월 그를 평로절도사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사도는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李師道는 節度使에 임명된 후 祖父 李正己 이래의 統治方式을 그대로 계승함과 동시에 唐廷과의 관계도 이전의 政策을 유지하였다. 즉 朝廷의 恩澤을 모두 享有하면서도 한편으로 叛逆의 태도를 보이는 二重性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한 矛盾關係는 元和 10년(815) 正月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元和 10년(815) 正月 吳元濟에 대한 唐軍의 토벌이 시작되면서 그러한 관계는 서로 대력을 벌이는 관계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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