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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규태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11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209 - 23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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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인 도산 안창호와 대한적십자회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본 글이다. 첫째 안창호가 대한적십자회의 설립과 확장 과정에서 행한 역할과 활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둘째 간호원양성소의 설립?운영, 의사의 선발과 학생의 충원에 끼친 안창호의 기여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셋째 대한적십자회의 선전활동에 미친 안창호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1919년 5월 상해에 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인 안창호는 1919년 7월 1일 대한적십자회를 발기하고, 8월 29일 대한적십자회를 대한민국의 공식 기구로 승인하였다. 안창호는 1919년 대한적십자회의 명예고문으로 회장 이희경, 부회장 안정근 등과 함께 북미, 국내,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약 2,500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대한적십자회의 지부와 지회를 조직하였다. 한편 그는 1919년 말 대한적십자회의 산하기관으로 구제회를 설립하고 한인 구제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20년 1월 말부터 간호원양성소를 설립하여 운영함으로써 상해 등지의 한인을 구호하고, 독립전쟁에 대비하였다. 장로교의 밀러학당을 졸업한 그는 장로교계 세브란스 출신의 의사 김창세, 곽병규, 정영준 등을 교관으로 초빙하여 간호원을 양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대한애국부인회의 김순애와 흥사단의 김연실 등을 간호원양성소에 입학시켜 간호원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1919년 7월 임시사료편찬회를 조직하고 한일관계사료집 을 발간하였던 안창호는 대한적십자회의 선전 활동을 후원하였다. 이 결과 1919년 11월 <대한적십자회의 공식 선언>에 3?1운동 시의 일제의 무자비한 살상과 체포 사실이 소개되었고, 1920년 상해에서 발간된 영문화보집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에 독립만세시위와 일제의 야만적인 폭행 사진이 실릴 수 있었다. 이처럼 안창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설립 초기에 대한적십자회의 조직 및 확장을 통해 독립전쟁을 준비하였다. 그렇지만 1921년 이후 노선 문제 등으로 인한 독립운동세력의 분열로 안창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 연구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 각 세력의 구성과 민족운동적 특징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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