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영애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70호
발행연도
2022.1
수록면
145 - 189 (4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연구는 중종대 음악적 중흥과 개혁 과정을 왕권의 위상 변화와 함께 그에 따른 음악정책의 전개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사항에 변화가 나타난 주요 사건들을 기준으로 중종대를 다섯 시기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첫 번째 시기는 중종 즉위년 9월부터 중종 9년 12월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중종이 즉위하면서 연산군대에 확대된 여악제도를 바로 잡기 위해 재정비한 사실과, 여악을 혁파하자는 빗발치는 대간(臺諫)의 상소에 여악을 양감(量減)하고, 또 남녀상열지사를 금지한 논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번째 시기는 조광조(趙光祖)가 등용되는 중종 10년부터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는 해인 중종 14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사림이 언관직(言官職)에 대거 진출하고 언관직을 중심으로 정치적 역할을 증대해 가며 커다란 변화가 초래되고 있었다. 중종과 대신, 조광조와의 논쟁에서 외방 여악(外方女樂)의 혁파와 악장 쇄신(樂章刷新)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세 번째 시기는 기묘사화 이후 대신들이 다시 주도적인 정치세력의 지위를 회복한 중종 15년부터 중종 25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정치세력 간의 갈등이 비교적 적었던 안정된 국면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조광조와 기묘사림(己卯士林) 시기에 혁파되었던 외방 여악의 복설(復設)이 대두되어 혁파된 외방 여기(外方女妓)가 어떻게 다시 설치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네 번째 시기는 중종 26년부터 중종 32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권신(權臣) 김안로(金安老)가 집권하면서 척신정치(戚臣政治)가 실시되어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균형이 크게 와해(瓦解)되면서 국정 전체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파악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동안 비판적 언론기관으로 충실히 활동해온 삼사(三司)가 김안로라는 한 개인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심각한 기능 변질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인식하면서 명(明)사신 접대에 관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다섯 번째 시기는 중종 33년부터 중종 39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앞 시기의 복잡한 정치적 부침(浮沈)을 겪으면서 그동안 왕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했던 중종이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노력한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종의 노력한 국면을 음악정책에서는 악공?악생의 폐단과, 재해로 인한 여기(女妓)를 임시로 혁파하는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중종대는 연산군의 폭정으로 무너진 예악(禮樂)을 수습해 음악문화를 재건하려는 목표로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거듭하면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남긴 기간이라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