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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진정환 (국립중앙박물관)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64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39 - 6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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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불교계에서 선종의 유입·확산은 신라 사회의 중요한 변화 요인이 되었는데, 가장 먼저 신라 왕실의 공인을 받은 것은 826년 당에서 귀국한 홍척이 개창한 실상산문이었다. 그런 만큼 실상사의 불교미술품은 신라 선종 미술의 모태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은 형태의 독창성뿐만 아니라 후백제 연호가 새겨진 유일한 자료로서 주목되나, 그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본고에서 실상사 편운화상탑의 특징 및 조형적 원류를 살펴보고, 편운화상탑 명문을 중심으로 조성 배경을 밝혀보았다. 편운화상탑의 현상과 특징을 살펴볼 때, 편운화상탑은 이 승탑이 실상산문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내세우기 위해, 실상산문의 상징과도 같은 석등의 원형평면을 다시 사용하는 한편, 스승인 홍척의 승탑인 증각대사탑을 모방·재현하려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후삼국기인 905년 수철화상탑의 조성과 910년 편운화상탑의 조성은 후백제 건국 이후, 더 엄밀히 말하면 901년 후백제의 대야성 침공 이후 신라 왕실과 후백제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실상사 내 세력들의 대응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다만, 실상사 내 친신라 세력이 905년 수철화상탑을 조성할 당시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것과 달리, 친후백제 세력이 산문을 개창한 홍척의 제자 편운이 910년 입적한 것을 계기로 편운화상탑을 조성하지만, 이미 친신라 세력으로 낙인찍힌 실상산문은 후백제 정권이 의도적으로 배제와 무시를 받아 변변한 후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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