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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경호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4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295 - 31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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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811년 김이교가 저술한 신미통신일록 에 수록된 해신제 관련 기사와 진설도(陳設圖)를 토대로 통신사 일행이 일본으로 출발하기 전에 거행한 해신제의 준비에서 설행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정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신제가 거행된 영가대는 남아있는 그림과 시문을 통해 볼 때 ?영가대기?에 기술된 것처럼 선창을 파올린 흙더미 위에 지은 건물이 아니라 본래 바다를 향해 솟아 있는 바위 언덕 위에 지은 건물이었다. 본래는 마루가 없는 대의 형태였으나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누각의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통신사선이 정박한 선착장은 권반이 처음 만든 후 이민구 등이 축대를 쌓고 수리하여 완성하였는데, 그 규모는 세로 45m, 가로 340m 정도의 ‘G’자형 구조였다. 선창과 바다 사이에는 선박 3척이 한꺼번에 드나들 수 있는 약 30m 길이의 수문이 있었다. 셋째, 영가대 해신제는 통신사 일행이 거행한 제례 중 유일하게 정사와 부사가 직접 참여한 의례였다. 전체 인원이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비용도 적지 않게 소요되었는데, 제물은 동래부에서 마련하였고, 제기와 기름천막 등의 도구는 통신사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넷째, 해신제의 제물 진설은 국조오례의에 기술된 중사(中祀) 해독제(海瀆祭)와는 다소 다른 형태로 마련되었다. 능인(菱仁, 마름), 검인(?仁, 가시연밥) 대신 잣[栢], 호두[胡桃]를 쓰고, 토해(兎?) 대신 구저(?菹)를 쓰는 등 준비가 어려운 제물은 좀 더 용이한 물품으로 대체되었다. 해신제에 관한 연구는 통신사 연구 중의 중요한 부분으로 당시 사람들의 해양인식과 일본에 대한 인식 등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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