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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봉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43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107 - 145 (39page)
DOI
https://doi.org/10.19169/hd.2022.2.4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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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만덕동 사지의 공간적 장소와 출토 유물 등을 통해 검토하였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만덕동 사지는 고려에서 조선초기까지 東萊縣?郡과 梁州ㆍ梁山郡의 속현이었던 東平縣의 공간적 범위 내에 있었다. 동평현은 仙岳寺鐘銘을 통해 戶長과 諸長吏 등의 향리세력이 존재하였고, 이들의 지배를 받았다. 동평현에는 동평이씨 등의 土姓이 존재하였고, 이들 세력은 낙동강을 기반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하였을 것이다. 동평현의 지배세력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덕천동 고분군을 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덕동 사지와 선악사 등의 주요 단월로 존재하였다. 둘째, 만덕동 사지는 국장생, 당간지주, 3차의 발굴에서 드러난 금당, 사지 주위의 유물 산포지 등을 고려할 때 상당한 범위의 사역을 가지고 있었다. 만덕동 사지의 사명은 ‘祇毗寺’의 기와 명문과 <金山寺香完銘>에 ‘祇毗寺’의 기록 , 그리고 부산ㆍ경남지역에서 최근 발굴된 사지의 명문과 문헌에 기록된 사명이 일치하는 사례 등을 고려할 때 ‘기비사’임을 알 수 있다. 셋째, 만덕동 사지는 3차에 걸친 발굴에서 금당지의 규모, 그리고 고급의 상감청자, 치미, 잡상 등의 중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고려할 때 高麗 12ㆍ1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최고의 사세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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