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산우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43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251 - 295 (45page)
DOI
https://doi.org/10.19169/hd.2022.2.43.25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최근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330번지에서 고려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전체적으로 건물지가 중심을 이룬다. 두 구역으로 이루어진 이 유적에서 하나의 구역에서는 대형 건물지가 만들어졌고, 다른 구역에서는 여기에 부속되는 건물로서 亭子나 그에 준하는 소규모 건물이 지어졌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 중 대부분은 고려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靑瓷였고, 총 176점의 기와 중 銘文이 새겨진 기와가 24점이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기와 명문은 禑王 13년 이전에 만들어진 東萊郡 治所城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 유적은 우왕 13년 이전에 건설된 동래군 치소성과 같은 시점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왕 13년 이전에 조성된 동래군 치소성과 이 유적은 직선으로 5.8km의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 기와는 동래군의 州縣軍을 동원하여 조달하였을 것이다. 두 명의 戶長들이 주현군과 白丁 농민, 불교사원의 신도를 지휘하여 동래군 치소성을 건설하는 데 사용한 기와를 만들고, 또 그 기와를 이 유적까지 운반하여 이 유적의 건설에 필요한 물자로 공급했을 것이다. 우왕 13년 이전에 조성된 동래군 치소성의 客舍 건물에서 출토된 기와 명문과 鄕吏의 가장 우두머리인 호장의 표기에서 성씨와 이름을 모두 기록한 점을 동시에 감안하면, 동래군 치소성이 건설된 정확한 시점은 1373년(恭愍王 22)으로 추정된다. 그 14년 후인 1387년(우왕 13)에 동래군 치소성을 내륙으로 옮겼고, 그것이 조선시기의 동래 邑城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이 유적은 고려시기의 동래군 치소성에서 5里의 거리에 있는 공공 건물인 五里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시기의 오리정의 존재와 그 기능은 과거에 급제한 進士가 고향으로 되돌아올 때 거행한 환영 행사인 榮親儀를 통해 알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