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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경상 (순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제131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35 - 17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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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공업센타 지정과 함께 시작된 공업도시 울산 건설은 국내 도시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발전주의 시대 개발의 수해 속에서 성장했지만, 그 변화는 국내 도시사의 거시적 변화를 설명해 주었다. 더불어 도시개발사업의 추진 방법과 결과를 통해 이 개발이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해하게 했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1960년대 후반 울산 도시계획의 수정은 증가하는 공장과 성장하는 인구를 담아내기 위한 공간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66년 시작된 이 수정 논의는 1968년과 1969년 두 차례에 걸친 용역 작업의 결과를 통해서 기본 틀이 완성되었다. 국내 전문가와 기술 기관의 참여, 그리고 토지이용계획의 수립을 통해서 기존의 단선적인 도시구조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특히 1969년 박정희의 지시 속에서 완성된 울산 종합개발계획은‘표준 공업도시’를 상정하면서 ‘한국식 전원도시’의 구조를 형성했고, 그 내용은 산업기지개발공사로 연결되었다. 한편, 공간계획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도시개발의 추진 방법과 그 결과 나타난 공간의 변화였다. 태화강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서 진행된 개발은 시차를 달리했으며, 개발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1960년대 당시 ‘수익자 부담’ 원칙이 강조됐지만 남쪽 신시가지 개발은 ‘공영개발’로 추진되었다. 그것은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과 재정이 열악했던 주민들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북쪽 구시가지는 남쪽 지역과는 상황이 달랐다. 구시가지 주민들은‘균형개발’을 내세우며 의욕적인 조합 결성과 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구시가지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민간개발로 진행된 이 구시가지 재개발은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었고, 공영주택 추진 역시 실패하면서 부진한 성과에 머물렀다. 이처럼 태화강을 경계로 나타난 상이한 개발은 울산의 도심을 ‘차등화’된 공간으로 분절시켰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는 이후 울산의 발전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채 유지되면서 지역의 분열과 주민들의 대립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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