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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기둥 (공군사관학교)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81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101 - 1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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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의 항공용어 제정 사업을 일제시대와 미군정기, 정부 수립 후로 구분해서 고찰하였다. 항공은 식민지로의 전락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과학기술 제분야에서도 일제의 영향이 가장 컸다. 일제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항공용어의 정립 사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식민지에도 적용했다. 그러므로 해방 후 국내의 항공계는 조선항공협회(한국항공건설협회)를 조직한 뒤, 항공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항공용어의 순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민간항공의 규모가 미미했던 상황에서 용어 제정 사업은 공군의 주관 아래 이뤄졌다. 해방 후부터 이를 주도했던 김석환(金石桓)은 군입대 후 공군 내 여러 조직에서 복무하면서 용어 제정 사업을 이어갔다. 6·25전쟁 초기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공군은 통역원이 임의로 번역한 용어를 혼용했는데, 그 용어는 과거 교육의 경험, 즉 일제 때 제정된 항공용어인 경우가 많았다. 공군은 전황이 고착화된 후 용어 제정 사업을 재개했지만, 관습화된 용어 사용을 완전히 혁파하긴 어려웠다. 또한 학술적인 차원에서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과학분야와 연계된 항공용어를 온전히 이해하고서 순화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과학용어제정위원회는 공군 내 현실을 고려해 용어 제정에서 관용적인 표현의 사용을 용인했다. 한국어 순화의 측면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이 결과는 일제 잔재의 청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기보다 해방 후의 혼란과 전문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그 결과의 미흡보다 노력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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