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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진원 (강릉원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12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101 - 12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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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서역과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최근 해상경로를 통해 인도에서 직접 전래됐다는 남래설이심심찮게 제기된다. 하지만 사료 부족으로 기존 통설을 번복하기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불교를 잘 알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16나한’, ‘칠성’ 등의 불교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아마도 『삼국유사』가 편찬되었을 당시의 불교 지식이 반영된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아유타국의 왕녀로서 수로왕의 황후로 기록되어있는 허황옥과 함께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으며, 불교의전래와 공식 수용의 시기가 같다고 볼 필요도 없다. 따라서 불교가 가야권역으로 들어온 시기는 허황옥이 가야에 온 서기 48년 이전일 수도 그이후일 수도 있다. 교조적이고 종파화된 불교가 아닌, 민속이나 민간신앙의 형태로 교역을 통해 민간에 먼저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당서역기』나 『불국기』에 아유타국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삼국유사의 일연은아유타가 인도의 고대도시 아요디야임을 인지했을 것이다. 아요디아는그 지명 자체가 인도의 종교를 상징하는 총체이다. 그러나 굽타왕조에이르러 아요디야라는 이름으로 개명될 때까지 이 도시의 이름은 사께따(Saketa)로 알려져 있었다. 허왕후가 가야국에 도래한 1세기경 이 지역은꾸샨왕조가 지배했던 시기로 헬레니즘, 페르시아계의 조로아스터교, 힌두교와 새롭게 등장한 대승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동서교역을 통해 축적되는 막대한 부와 더불어 번영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또한 불탑이 조성되고 불상이 막 등장하기 시작한다. 『삼국유사』에는 허왕후가 고향에서가져온 물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녀가 가져온 물품들과 유사한 것들이인도의 서부 해안과 동남부해안, 중북부 내륙의 아이하눔과 인근 꾸샨의도시들, 베트남의 오케오 유적지 등에서도 발굴되었다. 그리고 김해의 고분군에서도 발굴되었다. 인도와 가야의 접점은 문화가 매개하고 있었고그 내용은 다문화와 글로벌교역이었으며, 불교라는 형태로 이 땅에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허왕후가 남인도 출신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무렵 남인도의 안드라 부근에서도 여러 부파불교의 학파들이 활동했는데 이들은 점차 대승에 가까운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남인도 역시 해상실크로드의 활성화로 로마제국의 귀금속 등 서방의 상품이 유입되는 등글로벌한 국제교역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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