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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영섭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사연구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연구 제12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4 - 48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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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고대사에서 삼국에 맞섰던 ‘가야’(Gaya)의 명칭과 가야불교의 시원에 대해 탐구한 글이다. 한반도 남부에 자리했던 가야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에 맞서며 왜국까지 경략하였던 제4의 제국이었다. 수로왕은 붓다의 성도지이자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부다(보드)가야’를 의식하여 나라 이름을 불교식 국명인 ‘가야국’ 혹은 ‘대가락’(가락은 가야의 이명)으로 정하였다. 나아가 수로왕은 가야의 새로운 왕성터를 ‘십육 나한이 살만한 곳’이자‘일곱 성인이 살만한 곳’이라는 불교적 왕성 비정을 통해 국제적으로 앞선 선진문물인 불교의 이념에 의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수로왕이 대륙에서 서해를 건너온 서기 42년은 가야국의 건국 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왕에 의해 법제적으로 공인된 가야불교의 시원년이기도 하다. 수로왕의 8대손인 질지왕은 수로왕의 뜻을 받들어 대왕사와 왕후사를 건립함으로써 불교 공인을 재천명 하였고 재확인 하였다. 이후 가야는 불교의 이념에 의해 나라를 통치하면서도 철기문화와 조선(造船)기술을 주축으로 대륙과 해양과 교역하여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에 필적하는 사국시대를 안착시켰다. 그리하여 전기의 금관가야 및 아라가야와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반도와 대륙과 교역하였던 후기의 대가야는 고대의 한일 및한중 관계사에서 매우 주요한 족적을 남겼다. 따라서 전기의 금관가야와 아라가야 및 후기의 대가야는 가야제국을 주도한 나라였다는 점에서 이들 나라에 대한 통합적 이해가 필요하며, 이들의정신문화를 꽃피웠던 불교의 전래와 문화에 대한 종합적 이해도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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