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만호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호남학 호남문화연구 제59호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189 - 223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金壽延(1405~1455)은 羅州 출신 인물로 세종대에 추진되었던 북방 개척에 공을 세웠다. 증조부인 金琢은 조선 開創을 이유로 나주로 낙향했으며, 이후 김해김씨 侍中琢派를 형성하였다. 김수연은 세종 초에 무관으로 관직생활을 하던 중 1434년(세종 16) 9월에 실시된 謁聖試 武科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세종대에 시행된 무과에서는 무예와 강서에 모두 능해야 합격할 수 있었다. 이를 보면 김수연이 문무를 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시 김수연이 받았던 王旨 紅牌는 현재 그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데, 현전하는 조선전기의 왕지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또한 『經國大典』 이전의 관료제나 寶印 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므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김수연은 장원급제 직후 평안도 도안무사 崔潤德의 군관으로 선발되었다. 그는 1435년(세종 17) 1월 2,700여 기병의 여진족이 閭延城을 침략했을 때 이를 잘 방어했다. 또한 김수연은 정예병을 이끌고 적병을 추격하였으며, 매복 작전에도 말려들지 않는 등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1438년에는 함경도도절제사 金宗瑞의 지원 하에 6진 중의 하나인 慶興 지역을 다스렸다. 또한 1443년 상호군 김수연은 鍾城의 보청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인정받았다. 이후 김수연은 변방을 책임지는 장수로서의 역할을 역임하다가 1455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이에 世祖는 조문을 명하고 賻物을 전달하였다. 나주 출신 김수연은 문무겸전의 인물로 세종대에 행해진 알성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합격이후 그는 4군의 여연성과 6진의 경흥ㆍ종성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이렇듯 김수연은 최윤덕ㆍ김종서와 함께 세종이 적극적으로 시행했던 북방 개척에 일조하였다. 김수연과 같이 4군 6진 개척에 도움을 준 인물들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례들이 더 보충된다면 세종대의 북방 개척에 대한 실상이 더욱 선명해 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