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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초롱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0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257 - 286 (30page)
DOI
10.37331/JKAH.2023.6.11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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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直系 4親을 모시는 경향이 주를 이루던 신라 종묘에서 가장 이질적 모습을 보인 혜공왕대 종묘제를 살핀 것이다. 혜공왕대에는 중대 왕실의 조상으로 표방된 태조대왕에서 시조 미추왕으로 종묘의 首位를 바꾸고, 4개에서 2개로 親廟의 숫자를 줄이는 변화가 일어났다. 선행연구는 이에 대해 혜공왕 측이 종묘제 개편을 주도하였으며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혜공왕대 종묘제의 변화에는 왕권을 제약하는 측면도 있으므로, 혜공왕이 종묘제 변화를 선제적으로 주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이후 원성왕대의 종묘제 개편 시도와 애장왕대의 개편, 하대의 종묘제 운영에서 직계 4친을 모시려는 경향이 일관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직계 4친이 아닌 2친을 모시는 방안은 국왕 측에서 제기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글에서는 무열왕계의 종묘제 운영에 대한 진골귀족 세력의 인식과 혜공왕대의 불안정한 政局이 결합한 가운데, 진골귀족의 요구를 받아들여 혜공왕대의 종묘제 개편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이 글에서는 이에 따라 우선 무열왕계 왕실의 종묘제 운영과 혜공왕대의 변화상에 대해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혜공왕대 종묘제 개편의 배경을 親政과 연계하여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시정오묘’라는 표현에 집약된 혜공왕대 종묘제 변화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혜공왕대의 종묘제 개편 과정은 신라의 왕권이 기본적으로 진골 내부에서 추출되는 것으로, 국왕은 진골귀족 집단 내에서 결코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없었던 신라 지배체제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무열왕계의 종묘제 운영과 혜공왕대의 개편안
III. 혜공왕의 親政과 종묘제 개편의 배경
IV. 혜공왕대 ‘始定五廟’의 의미
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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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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