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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병준 (서울장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9호
발행연도
2023.9
수록면
101 - 1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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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장로회는 1946년 4월 한국선교회의 재건을 목적으로 한국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2명의 대표를 파송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직전까지 2명의 목사와 3명의 여선교사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선교회를 복구하려고 노력했으나 인력과 재정이 어려웠다. 1950년대에 19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고 1960년대에 30명의 선교사가 파견되었다.
호주선교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의 선교역량을 회복하지 못했고, 특수한 분야에 집중하는 선교를 했다. 전쟁 과정에서 일본으로 피신한 여선교사들은 일본의 한인을 위한 사역을 했다. 전후에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여선교사들은 유치원 사역, 여성 죄수 방문과 교육, 출옥여성을 위한 재활시설 운영, 통영·거제·거창·진주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순회전도를 했고, 성경통신과정을 실시했다. 1952년 설립된 일신부인병원은 전쟁의 참화 중 부산지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과 어린이를 돌보고, 의사와 조산사를 훈련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호주선교회는 장로교 선교회들의 지역 경계를 없애고 각 지역에서 인력과 재정의 불균형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현지교회 중심선교방법”과 연결되어 1964년 장로교 통합총회 안에 협동사업부를 설립하게 했다. 모든 선교회들의 재정은 일원화 되었고 총회산하 협동사업부에서 집행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호주선교회는 영등포산업선교회와 민주화운동을 지원했고, 장애우 재활을 위한 양지기술학교 운영, 소외된 여성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여성 재활선교를 지원했으며, 신학교육에서 일정한 공헌을 했다. 호주선교회는 소외된 약자와 여성, 사회정의에 대해 일차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신학적으로는 복음전도를 강조하면서도 에큐메니컬한 특성을 강조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미북장로회의 한국선교 재건(1943-1948)
Ⅲ. 호주장로회의 한국선교 재건
Ⅳ. 호주선교회의 사역(1950-현재)
Ⅴ.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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