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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미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58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341 - 386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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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원효가 『무량수경종요』를 찬술한 시기를 재검토하기 위해 인용한 經論을 분석하였다. 그동안 원효가 智儼의 『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에 실린 『미륵발문경』과 玄奘의 『成唯識論』을 인용하였다고 보아, 의상이 지엄의 저술을 가지고 귀국한 670년 이후에 찬술되었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650년대 초반의 저술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원효가 인용한 『미륵발문경』의 구절은 『공목장』보다, 道世의 『毘尼討要』에 실린 구절과 거의 같고 『法苑珠林』의 구절과 다르다. 그러므로 원효는 경을 직접 보았거나, 『비니토요』를 보고 인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원효와 도세가 『미륵발문경』의 설로 인용한 10념이 그대로 전하는 경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그들의 사후 번역되는 『대보적경』 발승지락회의 구절과 유사하다. 가재가 10념설의 근거로 제시한 『발각정심경』의 구절은 현재 전하는 『발각정심경』의 구절과 같다. 이로 보면 『미륵발문경』은 『발각정심경』과 『대보적경』 발승지락회의 중간에 번역되었다고 전하는 異譯本일 가능성이 크다. 『미륵발문경』이나 『비니토요』를 신라에 가져왔을 인물로는 입당유학 후 643년 귀국하는 慈藏과 圓勝이다. 이들은 『사분율』을 신라에 유포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한편 원효가 인용한 유식론의 구절은 眞諦가 번역한 『大乘唯識論』의 구절이다. 그리고 원효가 인용한 玄奘 번역 경론 중 가장 늦게 번역된 것은 649년 번역된 『佛地經論』이다. 이러한 사실로 본다면, 『무량수경종요』가 찬술된 시기를 최대한 650년대 전반까지 올려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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