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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명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2집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255 - 300 (46page)
DOI
10.18496/kjhr.2023.11.8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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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일본제국주의 지배하 식민지 조선에서 「고급사교구락부」가 정치적인 성격의 「내선융화구락부」에서 스포츠 성격의 골프구락부로 변해 가는 과정을 히라노 겐이치로(平野健一郎)가 『국제문화론』에서 제시한 「문화접변 과정」을 채용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10년대에 정착한 구평형인 「내선융화구락부」는 일제의 동화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조선인과 재조일본인 등 조선의 상층자본가들이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총독부 고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활동한 정치적 성격의 「고급사교구락부」이다.
「내선융화구락부」의 부분적인 해체는 공개적인 내선융화활동에 대한 반감, 총독부의 해외관광객 유치의 필요성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1921년 효창원골프장 개장을 통해 외래문화요소로서 골프(구락부)가 중국으로부터 전파, 제시되고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 창립과 청량리골프장으로 이전으로 수용되었다.
수용된 골프구락부는 업무 소홀에 대한 비난, 땔감을 잃은 주민들의 반발 등의 저항에 직면했다. 이후 골프구락부는 18홀 정규코스 군자리골프장 개장, 다양한 골프대회 개최 등을 통해 재해석・재구성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중반에 주로 일본인 총독부 고관들과 조선의 상층자본가들로 구성된 스포츠 성격의 「고급사교구락부」로서 신평형을 이루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내선융화구락부」의 동요
3. 골프구락부의 전파와 수용
4. 골프구락부에의 저항
5. 골프구락부의 정착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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