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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록 (부산대학교) 배혜정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7집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43 - 71 (29page)
DOI
10.52271/PKHS.2023.12.1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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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孔子에 대한 정조의 인식과 추숭 및 선양 작업을 살펴보았다. 공자 선양은 18세기 말 正學의 부흥 과정에서 나타났다. 이는 ‘정학을 높이고자 하면 先賢을 높여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정조는 즉위 전부터 유학의 정통과 심법이 공자→주자→송시열로 이어진다고 인식했다. 조선 학자들의 보편적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정조는 공자의 󰡔춘추󰡕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간행했으며, ‘大一統’의 의리를 천하에 밝히는 책으로 규정했다. 이는 󰡔주자전서󰡕 편찬의 기초 작업이었다. 그리하여 공자의 尊周大義를 조선이, 삼대 성왕으로부터 이어지는 道統을 자신이 계승하고 있음을 더욱 명확히 하려 했다. 정조는 춘추의리와 공자의 성품을 배우고자 했다. 그에게 공자는 天地生民이 있어 온 이후로 가장 훌륭한 인물이자, 三代 聖王의 도를 밝힌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정치와 학문을 주도하기 위한 그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에 공자를 다각도로 활용하였다.
정조는 서학에 개방적인 입장에서 온건한 대응을 취했다. 다만 경학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유학의 보급을 통해 당대의 학풍을 바로잡는 것에 더욱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서학에 대한 온건한 대응의 근거를 공자의 말에서 찾았다. 정조는 비인륜적인 행위를 학문으로 바로잡고자 했던 공자의 춘추의리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다.
정학의 부흥 과정에서 공자에 대한 추숭과 선양 작업이 동반되었다. 1792년(정조 16)부터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공자의 가계를 조선 또한 계승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대청사행을 통한 공자 관련 자료의 수집, 공자 후손에 대한 각종 우대책, 화성 궐리사의 설치, ‘곡부’로의 본관 통일 등이었다. 이를 통해 정조는 정학과 국가 정체성을 재정립하고자 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孔子와 그 저술에 대한 정조의 인식
Ⅲ. 邪學에 대응하는 扶正學과 공자
Ⅳ. 공자 追崇과 宣揚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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