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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지희 (국가유산청)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84輯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67 - 98 (32page)
DOI
10.31335/HPTS.2024.08.8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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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조선 광해군대(재위: 1608~1623년) 청기와의 제작양상과 유약의 특징을 중심으로 제작에 담긴 함의(含意)를 고찰하였다. 조선 후기의 청기와는 광해군이 집권한 1616년에서 1622년까지 이루어진 궁궐영건(宮闕營建)과정 중 인경궁(仁慶宮)의 홍정전(弘政殿)과 광정전(光政殿)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광해군대 궁궐영건과 청기와 관련 정책은 이슬람지역에서 수입한 회회청(回回靑)과 청기와를 연결해 사치스러운 임금으로 기록할 만큼 부정적이었다. 이 시기의 청기와는 인경궁의 광정전을 기반으로 인조 25년(1647)에 복원된 창덕궁(昌德宮) 선정전(宣政殿)의 현전유물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청기와 유약의 특징은 짙은 청색과 녹색의 유색을 띠며, 유층(釉層)이 두껍다.
광해군대 청기와 관련 정책은 임진왜란으로 사라진 제작방법을 모색하고 원활하게 재료를 수급하려는데 초점이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청기와는 ‘청화안료’와 ‘염초’의 재료를 활용한 유약의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청화안료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수입에 의존한 사치스러운 물질이었고, 화약(火藥)과 청기와의 재료인 염초는 명청전쟁(明淸戰爭: 1618~1662년)으로 인하여 수급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광해군대 정책적으로 육성된 염초는 청기와의 재료로 활용될 만큼 안정적인 공급이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사관이 언급한 회회청의 존재는 당시 사람들이 오인(誤認)할 만큼 짙은 청색이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광해군대 청기와의 제작에는 당시 정치・경제적인 상황을 함의한다. 아울러 이 시기에 제작된 청기와는 후대까지 영향을 줄 만큼 조선 후기 양식을 정립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창덕궁 선정전 청기와의 현황과 유약의 특징
Ⅲ. 광해군대 청기와의 제작과 유약의 제조기술
Ⅳ. 광해군대 청기와 제작의 함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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