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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수홍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저널정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7집
발행연도
2024.7
수록면
119 - 147 (29page)
DOI
10.46834/jkmcah.2024.7.4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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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8~1987)은 자신의 작업에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한 화가이다. 대대로 화가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의 가풍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허형의 가난이라는 걱정 속에서도 화가가 되었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난 그가 할아버지 소치 허련(許鍊, 1808~1893)이 살았던 운림산방을 떠나, 근대 도시로 성장한 목포로 이주하게 된 큰 이유는 작품의 수요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목포로의 이주는 근대적 미감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고, 목포화단이 탄생하게 된 밑거름이 되었다.
허건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했다. 그의 작품은 각 시대의 미감에 따라 변화하였다. 이 점은 광주에서 남종화의 전통을 고수했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두 작가 모두 허형에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전통을 고수한 허백련과 달리 허건은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였다. 허건은 1946년 ‘남화연구원(南畵硏究院)’을 열어 ‘신남화(新南畵)’운동을 전개했다. 그림을 가르치면서 제자들에게 화보나 스승의 그림을 본뜨지 말고 자기의 개성을 찾아 그리고, 현장 사생을 통해 그 정서를 작품 속에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이 점은 허건이 작품을 제작할 때 단순히 옛 전통에 머물지 않고, 작업 방식과 태도를 다양하게 모색한 이유를 말해준다.
근대미술사에서 허건은 호남화단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로 알려졌지만, 현재 대중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대중은 허건의 작품을 말년의 정형화된 산수화와 소나무 그림으로만 판단하여 다작의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940년에 그려진 채색화는 ‘왜색’이라는 평가 속에서 대중 앞에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또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한 지방의 한 작가로만 인식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그릇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1960년대 이전의 실경산수화들을 중심으로 허건의 작품에 나타난 화풍의 변화를 자세히 살펴보고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를 위해 허건의 실경산수화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작품의 변화가 뚜렷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구분하고, 일제강점기는 다시 관전(官展)에 출품한 작품을 중심으로 서울화단에서 배운 사경산수화(寫景山水畵)와 진보적인 일본화단의 영향을 받은 채색 풍경화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는 다시 수묵과 담채를 사용해 실경산수화를 그린 시기였다. 이당시 작품들은 허건이 주창한 신남화론과 함께 살펴보고 그의 실경산수화가 갖는 미술사적 성과에 대해 논해보았다.

목차

Ⅰ. 서론
Ⅱ. 일제강점기 동양화의 다양한 모색
Ⅲ. 해방 이후~1960년대 이전 : 신남화(新南畵)운동과 실경산수화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 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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