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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의 테러사건, 최근의 알제리사태, 프랑스에서 전개되었던 과거 식민지화에 대한 회개시위는 식민지화 시대, 즉 식민지 체제에 대한 후대의 반발이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식민지화는 식민지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폐해들로 축소될 수 없다. 식민지화가 낳은 예상치 못한 여러 다른 폐해들이 식민지화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개념부터 정리해보면, 지난 50년간 식민지 문제가 총체적으로 검토되는 가운데, 식민지화(colonisation)라는 용어는 유럽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비유럽지역의 식민지로서의 개발 및 건설을 뜻하는, 따라서 억압을 당한 식민지민의 해방노력은 무시되고 식민지를 건설한 식민주체의 입장만이 강조되는, 그래서 자연히 반식민주의적 담론을 낳은 유럽중심적 용어이다. 반면, 다소 뒤늦게 사용되기 시작한 식민지 체제(colonialisme)라는 용어는 시기적으로는 식민지화와 탈식민지화의 과정을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식민모국과 식민지 모두를 포함하면서 그 과정과 장소 모두에서 만들어진 역사현실, 즉 인종차별을 비롯한 여러 가지 갈등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식민지화에 대한 비난 내지 부정의 의미를 함축한다. 따라서 식민지화와 식민지 체제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식민자 없는 식민지화는 있을 수 없지만, 식민자 없는 식민지 체제는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근 몇 십년간에 세계의 도처에서 생겨난 여러 갈등을 어떻게 분석하고 규정할 것인가?
첫째, 식민지화는 식민지 체제의 잔학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의 역사가 이데올로기, 이들 체제의 작동, 그 정책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그 체제에 몸담은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참여의 역사이기도 하듯이, 식민지화를 위한 당초의 프로젝트와 식민지화에 따른 그 프로젝트의 결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즉, 식민자의 입장에서 보면, 식민지는 현금(富)을 얻기 위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그리고 명예 즉 맹목적인 정복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지만, 그리고 현금이나 종교보다 명예욕이 더 강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작한 식민지화의 결과는 당초의 의도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초기의 식민자는 일반적으로 식민지민을 학대하였는데, 사실 초기의 식민자는 범죄자, 왕의 정적 등 식민모국에서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들 학대받던 사람들이 식민지에 와서 식민지민에게 노동을 시킬 경우, 이들은 학대받은 사람이 의당 그렇듯이, 식민지민을 학대하였고, 그렇게 학대받은 식민지민의 자녀들은 다시 부모의 학대를 받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잘못된 과거가 계속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1860-80년대의 프랑스 제3공화국처럼, 식민모국이 교육을 중시하여 15-20%의 알제리인들이 대학입시가 가능할 만큼의 교육을 받았으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프랑스 공화국의 정책이 오히려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래서 그 중 일부가 민족 운동지도자가 되었다든지, 영국이 3억 인도인들에게 근대적 의술을 베풀기 위해 인도인 의사를 대거 양성하였지만, 50년 후의 결과는 그렇게 양성된 인도인 의사들이 본국의 병원으로 진출, 영국인 의사들을 대체하는 등,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식민지 지배자의 인종차별적 태도는 식민지 체제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특징을 구성하기도 한다. 인종차별적 태도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화적 불평등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이를테면 이미 진보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이 그렇지 못한 식민지민을 열등하다고 차별 대우하거나 뉴칼레도니아인에 대해서처럼 아예 진보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소멸정책을 쓰는 문화적인 인종차별이 있고, 다른 하나는 혼혈에 대한 고정관념으로서 이를테면 나치스처럼 혼혈을 자연법 위반으로 간주하면서 유대인과의 혼혈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일종의 범죄적 형태의 생물학적 인종차별이 있으나, 실제로는 양자가 뒤섞이는 일이 많다. 문제는 인종차별이 식민지 팽창, 산업혁명, 서구의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19-20세기에 점차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유럽과 유럽 식민지의 생활수준의 차이가 지난 150년 동안 1.5 대 1에서 5.2대 1로 늘어났다면, 인종차별 또한 그에 못지않게 늘어났다.
물론, 인종차별에도 지역간 그리고 시대적인 차이는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는 브라질 인구의 상당수가 혼혈아이듯이, 두 번째 종류의 인종차별은 적었으나, 문화적 차별은 강했고,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은 흑인의 사회적 상승이 보여주듯, 첫 번째 인종차별은 줄어들었으나, 두 번째 인종차별은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인종차별적 현상이 식민지 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는 당초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식민지화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면서 얼핏 무관하게 보이는 다양한 역사현상들을 장기적으로 분석해야만 제대로 이해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식민지 체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 등이 이 강연원고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