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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江原人文論叢 第15輯
발행연도
2006.6
수록면
211 - 24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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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의 역사 속에서 탄압과 박해, 그리고 학살의 문제는 존재 그 자체가 역사 속에 기억되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압과 박해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고, 그 속에서 조선인은 삶을 영위했던 것이다. 주요한 네 가지의 탄압과 박해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관동대지진은 진재가 아니라 학살이었다. 학살은 조직적으로 자행되었다. 일제는 사회운동을 탄압하면서 눈에 가시였던 조선인을 쓸어내려고 했다. 관동대지진은 적어도 6천명 이상의 조선인이 죽어갔던 탄압과 박해를 넘은 죽음의 역사였던 것이다.
둘째, 선진적인 활동가 김천해는 감옥에서 야수적인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옥내 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감옥에서 1930년 3ㆍ1운동 기념투쟁, 메이데이투쟁 등을 주동했고, 특히 옥중에서도 『감방신문』을 발간하여 이론적으로 무장해 갔다. 그리고 공판투쟁을 통해, 비록 감옥 안이지만 탄압에 정면에서 맞서 싸웠다.
셋째, 강제연행은 일제에 의해 1939년 이후 1945년 8월 일본 패망까지 자행되었다. 이 때 일제는 노무동원, 병력동원, 준병력동원, 여성동원 등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물자와 인력을 수탈해 갔다. 이러한 조선인에 대한 강제연행은 조선인을 전선과 노동현장에 끌고 갔고, 결국 제국 일본에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넷째, 해방 공간인 1948년 한신교육투쟁은 조선인이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성장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미ㆍ일의 권력에 대항해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이것은 재일조선인 스스로가 규정하듯이, 자위를 위해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상과 같은 ‘박해와 탄압’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계획적인 탄압과 박해가 자행되었고, 그것은 학살로 이어졌다. 둘째, 박해와 탄압은 민중의 투쟁력을 자극했다. 셋째, 박해와 탄압에 맞선 투쟁은 끝내 승리를 획득했다. 넷째, 재일조선인사 및 우리 민족운동사 속의 이정표로 자리 매김되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관동대지진 속의 조선인학살
3. 감옥에서도 탄압에 정면 승부한 김천해
4. 노동력 수탈에서 강제연행으로
5. 해방 공간 1948년 한신(阪神)교육투쟁
6.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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