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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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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치사상학회 정치사상연구 정치사상연구 제11집 2호
발행연도
2005.11
수록면
39 - 61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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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 불교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의 “호불(好佛)”의 태도는 그 당시 신료들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졌는가. 세종은 재위 초년의 억불(抑佛)정책(시찰 노비의 혁파, 교단의 통폐합)과 달리,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불교를 보호하고 선호하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홍천사 사리각 논쟁’과 ‘내불당 건립논쟁’에서 보인 세종의 호불적 태도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성리학적 유교의 세례를 받은’ 많은 신료들로부터 그는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종의 불교와 정치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서 필자는 다음 몇 가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국왕의 ‘신앙’ 문제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즉 지존(至尊)의 국왕조차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 둘째는 ‘성리학의 세례’를 받은 신료들의 이분법적 정치관과, 정통/이단으로 양분할 수 없는 정치세계의 다면성을 인정하고 이를 지키려는 국왕 세종과의 갈등과 대립의 과정이다. 세종이 때로 무리수를 쓰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정치의 영역’은 과연 무엇인가. 셋째, 당연한 얘기지만, 세종은 그저 모범적인 ‘성인군자’가 아니라, 필요할 경우 독단과 기만까지도 사용하는 엄연한 현실적인 정치가였다. 바로 이 점을 밝혀내고자 한다.

목차

Ⅰ. 문제의 제기
Ⅱ. 세종의 불교와 풍수학 인식
Ⅲ. 척불논쟁과 정치가 세종의 반응
Ⅳ.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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