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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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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근대문학회 한국근대문학연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제16호
발행연도
2007.10
수록면
243 - 27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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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일보』의 편집장으로 부임하여 1937년 만주로 이주했던 염상섭은 1945년 해방 후 신의주를 통해 귀국하기 전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만주에서 보냈다. 만주로의 이주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오족협화와 왕도낙토를 표방하고 새로운 근대 국가의 건설을 내세웠던 ‘만주’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주인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염상섭은 『만선일보』에 장편 『開東』을 연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제목만 전해지고 있으며, 남아있는 문필 활동으로는 재만조선인 창작집 『싹트는 대지』와 안수길의 창작집 『북원』의 서문이 유일하다. 게다가 염상섭 스스로도 이 시기 자신의 행적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의해 ‘작가로서의 고자’ 상태였다고 회고되는 바와 같이 이 기간 ‘작가로서의 염상섭’은 문학사에서 지워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 직후 만주 안동에서 신의주를 거쳐 남한으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해방의 아들」, 「혼란」, 「모략」, 「삼팔선」, 「이산」, 「재회」 등의 작품은 만주에서의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보게 하는 전기적 자료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본고에서 살펴볼 「혼란」, 「모략」, 「해방의 아들」 세 작품은 해방 직후 만주에서의 작가적 체험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해방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태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염상섭은 이미 「남충서」와 「사랑과 죄」에서 조선인 아버 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인물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통해 정체성 형성에 개입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에 대해 조명한 바 있다. 하지만 해방 후에는 「해방의 아들」에서 ‘남충서’와 동일한 출생 배경을 지녔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인으로 살아왔던 ‘조준식’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부계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당위만으로 ‘마쓰노’를 ‘조준식’으로 계도해 나간다. 이렇게 ‘마쓰노’가 처했던 상황을 단순히 ‘가정’ 문제로 축소하고, ‘조준식’이라는 조선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흥규’(염상섭)가 ‘마쓰노’를 통해 지식인의 가면을 쓰고 만주국에서 준 일본인으로서 살았던 식민지 시대 자아의 환영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식민지 시대 쓰고 있던 자신의 가면을 벗어내고 대의명분을 통해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 필요했던 염상섭은 ‘마쓰노’를 ‘조준식’으로 되돌려 놓았던 것이다. 「혼란」과 「모략」에는 식민지 시대 써왔던 ‘가면’을 벗기 위한 자기 합리화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갑작스런 해방을 맞아 혼란스러웠던 지식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아의 분신을 통해 감정의 미묘한 선을 드러내는 이상의 작품들은, 일제 말 만주 체험에 대한 염상섭 식의 자기 고백이라 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식민지 시대 자아의 환영(幻影)과 가면 벗기
3. ‘가면’을 쓴 지식인의 혼란과 망설임
4. ‘가면 벗기’의 명분 만들기와 지식인의 자기 합리화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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