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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90號
발행연도
2008.6
수록면
101 - 144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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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9년(1785) 12월에 일어난 삼수부 역모 사건은 정조 초반 宋德相과 宋煥億 등의 실각을 계기로 그와 사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三水 座首禹德夏가 주동하였다. 이 당시 송덕상과 송환억 같은 정조 초반 정국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삼수로 유배되었고, 우덕하는 이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며 후일을 기약했다.
하지만 송덕상과 송환억은 洪國榮의 측근으로 몰려 재기 불능상태였고, 이 와중에 송덕상은 사망하였다. 이에 우덕하는 삼수의 유력 인물과 謫居人들, 떠돌이 訓長 등과 함께 政局의 반전을 꾀하려고 했고, 그 방법은 서울의 동지에게 ‘흉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흉서’는 金鐘秀를 포함한 고위 관료에 대한 일종의 살생부였다.
우덕하는 당시 삼수 일대에 흘어 들어왔던 柳泰守ㆍ柳漢敬 등 거사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거사 유태수에게 順安 韓哥의 집에 ‘흉서’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순안 한가의 집에 ‘흉서’를 전달하기 위해 길을 떠난 유태수ㆍ유한경 등 거사 일행이 단천에서 체포됨으로써 일은 더 이상 진척될 수 없었고, 곧 推鞫으로 이어졌다.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주모자 우덕하가 물고됨으로써 자세한 친상을 알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수의 토박이 유력자, 적거인, 떠돌이 훈장, 거사들이 복잡하게 사건에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거사 1만여 명이 전국에 흩어져 있고, 이들이 擧兵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禹弼謨 등이 彌勒信徒들에 대한 진술을 함으로써 주목을 끌었고, 재판은 새 국면을 맞기도 했다. 미륵신도 李龍範 등은 ‘神將’을 맞이하는 행사를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新世界, 彌勒世界를 맞이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彌勒聖人을 내세우기도 했으며, ‘鄭氏가 장차 나라를 얻는다.’는 등의 鄭鑑錄의 핵심 논리를 전파하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을 통해 거사들의 삶의 방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곳곳을 전전하며 行乞, 占卜, 기도, 염불, 행상, 연희 등을 통해 생계를 해결했고 때로는 역모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역모를 위한 ‘흉서’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 의의는 결코 적지 않다. 먼저 이 사건의 분석을 통해 정조 초기 홍국영과 송덕상 실각 후 정국 동향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잇따라 일어난 정치변란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겠다.
그리고 거사들의 다양한 삶과 행동 양식을 『推案及鞫案』의 재판 과정 분석을 통해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미륵신도들이 ‘신장’ 의식을 통해 ‘신계계’, ‘미록세계’라는 이상향 추구의 구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 사건의 사회, 문화사적 의의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거사들의 활동과 역모 사건 가담 사례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데 있으며, 미륵신도와 관련해서도 숙종조 이후 최초로 그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데에 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사건의 개요와 추이
Ⅱ. 사건의 성격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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