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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6
발행연도
2009.12
수록면
85 - 129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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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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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리비에 ‘辛巳’와 ‘只折盧葛文王’이 보이므로 그것의 건립 연대는 501년(지증왕 2)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성리비의 발견으로 상고기 신라 6부는 자치적인 관리조직을 갖추고 자체의 영역과 주민을 다스리는 지역집단에서 기원하였고, 그 내부에는 자치적인 관리조직과 지배기반을 보유한 여러 지역집단, 즉 부내부가 존재하였음이 명확하게 증명되었다. 또한 종래에 논란이 많았던 6부의 성립 시기를 니사금 시기까지 소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중성리비에 두지사간지궁과 일부지궁이 보이는데, 이것은 두지사간지와 일부지의 식읍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501년에 모단벌훼가 두지사간지궁과 일부지궁을 빼앗았는데, 이것은 마립간시기에 훼부 김씨 왕실이 훼부와 사훼부 소속 왕족에게 지방의 특정 지역을 식읍으로 사여하면서 지방지배를 둘러싸고 6부 지배자들 사이에 발생한 분쟁과 관계된다. 이에 따라 신라정부에서는 6부인으로 구성된 爭人集團, 즉 평결집단을 조직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그 내용을 지절로갈문왕 등 3인의 교시로 반포하였다. 530년대에 部의 성격이 단위정치체에서 왕경의 행정구역단위로 바뀌면서 部別 지방지배 방식은 부정되었고, 국왕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과 훼부ㆍ사훼부 소속 왕족ㆍ귀족들이 식읍ㆍ녹읍을 매개로 지방을 통치하는 지배구조가 정립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중성리비의 판독과 해석
Ⅲ. 중성리비에 나타난 新羅 6部의 性格과 支配構造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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