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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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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08.8
수록면
35 - 7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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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8년 이전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외래음악의 전모를 밝히고, 상세한 음반목록을 작성하며, 아울러 녹음된 실제 음악이 어떤 곡인가를 밝힘으로써 초창기 외래음악 연구에 기초자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1928년 이전에 외래음악이 취입된 유성기음반은 150면이고, 취입곡은 153곡이 확인되었다.
창가는 전통음악에 대한 외래음악의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용어로, 초창기에는 외래음악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였다. 서양음악은 1913년부터 유성기음반에 취입되었는데, 대부분 찬송가와 서양민요가 번역된 것이었다. 서양음악은 교회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전파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연주수준이 높고 체계적이었다. 기독교청년회(YMCA)를 중심으로 金永植, 金恩植, 崔東俊, 金仁湜, 安基永, 鄭聖采, 洪蘭坡, 尹心悳 등과 외국인 선교사들까지 녹음(반주)에 참여하였다. 또한 이들은 아동을 교육시켜 창가를 취입하기도 했다.
일본식 창가는 학교교육을 통해 보급되었지만, 민간에서는 일본 대중음악이 유행하였다. 권번을 통해 일본 대중음악이 보급되고, 유행하면서 조선식으로 번안되었다. 일본식 창가는 주로 경기소리를 하던 기생이나 혹은 일본노래를 전문으로 부르던 기생들에 의해 유행되었고, 다수의 유성기음반이 취입되기도 하였다.
개화기 이래 외래음악의 전래는 한국 음악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 100년 동안 이 땅의 음악의 변화는 한 나라의 언어가 완전히 바뀐 것과 똑같은 규모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유성기음반은 매우 강력한 매체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외래음악 유성기음반의 발매와 내용
Ⅲ. 맺음말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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