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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23호
발행연도
2009.8
수록면
149 - 18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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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아직 학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양명학 연구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보이는, 金源極(1871-1927)을 통해서 그가 ‘유교 이해’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이자 근대적 학술이 본격 유입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양명학’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김원극에 대한 소개는 서경석ㆍ김진량 엮음의 『식민지 지식인의 개화 세상유학기』, 최재목의 「日帝强占期 雜誌를 통해서 본 陽明學 硏究의 動向」, 금장태의 『한국 양명학의 쟁점』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고, 본격적인 연구에 이르지는 못했다.
김원극은 그는 함경남도 永興郡 출신 유학자로, 松南, 春夢, 春夢子, 松南春夢 등의 필명을 사용하여 1908년부터 『西北學會月報』, 『太極學報』, 『大韓興學報』 등에 많은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태극학보』에는 주필로 활동하였고, 西北學會에서는 副總務로 활동하던 중 1909년(明治四十二年) 11월 11일 伊藤博文 被擊事件 嫌疑者로서 眞相調査를 받았으며 1910년에는 朴殷植에 이어 『서북학회월보』의 주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1934년 11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학과 경제학을 겸비한 정치객이었던 바 그 외에도 문맹퇴치에도 노력하여온 드문 지사이었던 바 지난 소화 2년 8월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김원극은 유교를 1910년대 당시의 서세동점, 약육강식의 세계사적 현실에 맞도록 근대적, 실천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의 개혁적 특성은 이태리 건국 삼걸의 강조하고 그러한 기풍을 한국의 청년들에게 계몽할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 데에서, 아울러 유교를 서구 기독교에 대항할만한 근대적 콘텐츠(교리, 텍스트 등) 및 종교적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한 바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수구적 보수 유림들과 사고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김원극은 박은식의 대동교 정신에 동조하는 유교 개혁 쪽에 서 있었다. 그는 유교의 본질은 계승하되 구체적 내용들은 한국의 지금ㆍ여기에 맞는 ‘時中’의 유교를 지향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는 유교가 새로운 체제로 개혁하고 나아가서 利用厚生 및 국민ㆍ청년계몽이라는 세계사적 문명에 발맞출 수 있는 학술이어야 함을 적극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의 유교에 대한 관점은 그대로 양명학 이해에도 적용된다.
김원극의 양명학 이해는 「明代諸儒의 學說」과 「王陽明學論」에 잘 드러나 있는데, 먼저 「明代諸儒의 學說」에서는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양명학과 불교의 합일론은, 「王陽明學論」에서는 양명학이 나의 정신을 번롱하여 단순히 悟道를 주안으로 한 禪家와 다름을 지적하고 ‘人倫交際의 道’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각 학술은 그 세부적 특성을 유지하지만, 큰 틀에서는 합치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王陽明學論」에서는 근대학문의 한 장르인 ‘倫理學’으로서 양명학을 이해하는데 큰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의견은 아마도 1908년 그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얻은, 당시 일본에서 유포되고 있었던 최신의 양명학 지식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추정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한국적 상황에서 근대적 학술체계로 전통사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양명학이 근대적 학문에 어울리는 특징이 있음을 평가하고자 했음을 인정해도 좋겠다.
김원극이 구상한 「倫理?」으로서의 양명학은 주체성과 능동성을 갖고 있으면서 ‘人倫交際의 道’로서 실제 사회에서 실용성을 갖춘, 化學ㆍ物理學ㆍ金石學ㆍ地質學등의 제 학문과 대등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인륜의 학문’(=윤리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1910년대의 한국에서, 외국의 신지식을 수용하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양명학을 근대적 학술로서 재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이 당시의 여러 양명학 연구가와 비교해 볼 때 큰 특징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목차

【요약문】
Ⅰ. 들어가는 말
Ⅱ. 陽明學 이해의 근거: 유교의 근대적 개혁론
Ⅲ. 金源極의 陽明學에 대한 이해
Ⅳ. 나오는 말
〈참고문헌〉
[附記]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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