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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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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광배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62號
발행연도
2009.6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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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범종의 현황에서 15세기에는 왕실발원 범종이 많은데 이는 당시 많은 왕실발원의 중창 혹은 개창 불사와 동시에 범종이 제작된 것에 기인한다. 16세기 범종의 발원자 계층은 민간이 주를 이루는데 이미 16세기에는 유교적 지배질서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범종의 제작에 왕실이 전면에 나서서 발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5세기 왕실발원 범종은 중국범종의 요소를 수용하는데, 그 원인을 元의 영향, 장인세력의 약화, 明과의 교섭관계 등에서 살폈다. 특히 15세기 왕실발원 범종은 왕실, 관료, 승려, 장인집단 등이 체계적으로 참여하였음을 명문과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범종의 조형에도 관음신앙의 유행을 반영하고 있음을 육자진언, 관음보살상, 명문 등을 통하여 밝혔다.
16세기 민간발원의 범종은15세기 왕실발원 범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장인세력, 경제적 지원 등으로 인하여 중소형의 작은 크기이다. 이 시기 범종은 기본적으로 전통 범종의 양식을 따르면서 15세기 수용된 중국종의 요소도 보이는데, 그 외래요소의 자국화 경향 역사 뚜렷이 엿볼 수 있다. 또한 16세기 범종은 15세기 범종과는 규모면에서 차이는 나지만 조형성에서는 한국종의 전통적인 미감에 꾸준히 접근하려는 표현의지는 동일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15세기 왕실발원 범종은 시각적으로 중국종의 과장되고 위압적인 모습과는 달려 균형감 있게 안정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당시 유행한 관음신앙의 실천형태로서 육자진언과 관음보살입상, 파도문 등을 문양의 모티프로 표현했다. 문양의 시문에 있어서도 凹凸 두드려지지 않는 전통 한국 법종의 표현 방식을 추구하여, 중국종의 요소를 수용함에도 중국종과 다른 조형성을 보이는 원인에 대해 새롭게 밝힐 수 있었다.
이 후16세기 민간발원 범종들에서도 전통범종의 형태를 추구하면서도 중국종의 요소와 15세기 새롭게 등장한 문양들을 전통의 선상에서 표현하려는 조형의지는 꾸준히 유지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조선 전기 범종에서 15세기를 한중혼합양식의 시기, 16세기를 복고적인 양식의 시기로 규정하던 다소 분리된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의 연결 선상에서 양식을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15-16세기 범종의 양식 변천 고찰을 통해 17-18세기의 僧匠係 및 私匠係 장인들의 활발한 주종활동으로 제작된 많은 추의 조선 후기 범종의 양식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제시했다는 점에 본 연구의 의의를 두고 싶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朝鮮 前期 梵鍾의 現況
Ⅲ. 朝鮮 前期 梵鍾의 發願과 製作
Ⅳ. 朝鮮 前期 梵鍾의 樣式 變遷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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