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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욱 (세종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제31집
발행연도
2010.8
수록면
85 - 11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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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는 일제강점기 동안 시인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했지만, 영화계와도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임화가 처음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영화의 대중 동원 능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접 영화 〈유랑〉과 〈혼가〉에 출연하였고, 〈화륜〉의 평가를 둘러싼 논쟁을 펼쳤던 것이다. 그래서 예술대중화와 관련하여 여러 논쟁을 펼쳤지만, 실제적인 성과는 크지 않았다. 카프 본부와 영화단체와의 내분 사태와 함께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본의 문제와 영화 제작 및 상영과정에서의 검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제작과 상영이 부자유스러운 상황에서 대중 획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임화가 다시 영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파시즘이 강화되던 1940년대였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어로 된 문학이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임화는 영화를 통해 조선어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1930년대 후반기에 조선문학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했던 ‘예술성’을 재호명하면서 조선총독부의 문화 통제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면모는 해방 직후 모더니즘과의 결합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정책이 조선어 영화를 불허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자, 더 이상 영화 비평 활동을 전개하지 않고 침묵하기에 이른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는 말
2. 1920년대 영화 체험과 프로영화운동
3. 1940년대 영화비평론의 다층적인 담론 전략
4. 조선영화와 조선어의 가능성
참고문헌
영문초록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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