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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명호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1호
발행연도
2008.5
수록면
45 - 7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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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연구목적은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동일하게 파악하였던 김흠돌과 김군관을 관련 교서의 내용 분석을 통해 정치적으로 차이점이 있음을 신라중대의 ‘골품귀족의 관료화’라는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의 승리를 통한 영역의 확장과 民의 증가라는 물질적 기반에 변화가 있는 중대가 이전 삼국이 공존하던 시기와 국가체제 면에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고, 김흠돌 모반은 변화하는 신라 중대사회를 보여주는 상정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김흠돌 세력과 당시 상대등인 진복과의 관등과 관직의 비교, 모반 관련 1차 교서의 내용분석을 통해 중대에 진행되는 국가의 ‘관료화’ 정책의 반발을 모반의 발생 배경으로 추측하였다.
전쟁을 거친 신라 中代는 골품귀족들에게 새로운 국가체제 운영을 위해 이전의 타고난 신분적 지위와 함께 국가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도 요구되어지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이에 김흠돌 모반세력은 관료로서의 무능함과 더불어 딸의 無子로 정치적 지위 또한 불안해짐에 따라 喪中이라는 정치적 공백기를 이용, 모반을 감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 뒤쳐진 진골귀족의 결집이 김흠돌 모반 사건이라고 추측하였다.
다음으로는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는 군관의 모습을 2차 교서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았는데, 특히 군관 처리방법과 군관의 태도에 주의하였다.
교서에 따르면 군관은 사전에 역모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적극적으로 모반에 가담하지 않은 듯하며, 그렇다고 미리 국가에 알리지도 않는다. 결국 이러한 군관의 태도는 방관자적인 입장인데, 그것은 중대 들어 왕을 정점으로 국가운영의 구성원으로서 골품귀족들이 서열화 되고, 인식되어지는 시기에 군관은 골품귀족도, 그렇다고 신라의 관료도 아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차 교서와 달리 2차 교서에 보이는 군관 처형의 이유가 관료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중심인 것도 김흠돌과는 다른 군관에 대한 신라(신문왕)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라 생각된다. 특히 2차 교서에 보이는 ‘마땅히 모반의 무리들과 함께 처형하여 후진에게 징계로 삼겠다’라는 표현은 신문왕의 군관 처형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이해된다.
681년 신라사회는 ‘골품귀족의 관료화’ 과정의 과도기이자 출발점인 시기로 파악되며, 군관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진골귀족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金欽突 모반세력과 1차 교서
3. 2차 교서를 통해 본 金軍官의 官僚化 모습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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