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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덕수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30호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283 - 30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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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1907)가 태동한 세계사적 배경과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의 평화회의와 특사단 활동에 대한 인식을 검토한 것이다. 자료로는 당시 주요 언론이었던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를 이용하였다.
당시 국내 지식인들은 러일전쟁 이후 한국의 위상, 즉 보호국화의 가능성에 대해 주의하고 있었으며, 포츠머스 조약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조약 내용 가운데 조선의 ‘보호 지도 감독’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전개에 대해 논의와 대응책을 모색하였다. 이 시기 보호국화를 둘러싼 논쟁의 주요 특징은 당시 일본국내 국제법학자들의 견해의 영향을 받아 보호국에 대한 인식을 가졌으나, 향후 한국인들이 교육과 실력 양성을 통해 보호국의 지위를 벗어나 대등한 국가로의 자립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일본 국내의 조선보호국화에 대한 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보호국논쟁이었던 점에 비하여 국내 신문에 전개된 보호국화의 논의는 상반된 것이었다. 둘째로 대한제국 시기 국제법에 대한 인식 수준은 국내 언론의 경우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국내지식인들은 열강에 대한 인식, 특히 미국에 대해서 당시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 정부가 가지고 있었던 우호적인 인식과 다른 세계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국내지식인들은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과 달리 헤이그 평화회의가 회의의 성격상 당시 대한제국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며, 서구 열강들도 대한제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1907년 대한제국과 세계

2. ‘보호조약’과 보호국체제에 대한 인식

3. 헤이그평화회의와 한국특사에 대한 인식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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