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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상수 (日本東京大學)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29호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175 - 21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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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과거공부, 혹은 시험의 답안을 의미하는 ‘擧業’을 가지고 명대의 과거와 학문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명대의 관리등용제도는 사실상 科擧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이는 결국 초야에 호걸이 묻혀있는데 조정에는 유능한 관리가 부족한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隆慶?萬曆경부터였다.
명대의 거업은 正德?嘉靖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隆慶?萬曆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天啓?崇禎에는 타락의 극에 이르렀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거업의 변화는 당시의 학문적 동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정덕?가정부터 시작되는 양명학의 유행은 마침내 거업에도 영향을 미쳐 융경?만력 초년부터 주자학의 권위를 동요시켰다. 이로 인해 양명학을 비롯하여 제자백가, 불교, 도교 등 그때까지 이단시되었던 사상들이 거업에 도입되는 사태가 출현하였다.
이러한 ‘學無定論’의 상황은 거듭되는 명조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조류에 밀려 악화될 뿐이었다. 한편, 거업의 혼란은 당시의 출판 붐과 맞물려 擧業書의 대유행을 가져왔으며, 거업서의 유행은 명말의 사회에 ‘空疏不學’의 풍조를 만연시켰다.
顧炎武는 이러한 공소불학의 풍조로 인해 학문이 황폐화되고 인재가 타락하여, 결국 명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일한 논의는 黃宗羲에게서도 나타난다. 이들의 주장은 『明史』 儒林傳에 반영되어 “科擧가 성하여 儒術이 미미해졌다”라는 명대 유학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명대의 학문은 과거 때문에 쇠퇴하였다는 주장은 청초에 가장 권위 있는 견해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명대의 학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청초의 새로운 학문적 사조에서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중요한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목차

요약문
I. 머리말
II. 明代의 科擧
III. 隆慶萬曆의 擧業
IV. 陽明學과 擧業
V. 明朝의 對應
VI. 擧業書의 유행
VII. 科擧와 學問
VIII. 맺는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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