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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Wei Zheng (북경대학)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8 No.1
발행연도
2013.2
수록면
1 - 17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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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입지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두 유적의 조영 시기는 사료가 부족한 탓에 대개 그 곳에서 출토되는 중국식 전문토기를 통해서 파악한다. 이를 주제로 중국 학자가 저술한 대표적 연구로서 『동아지구출토조기전문도자기적연구(??地?出土早期?? 陶瓷器的硏究 )』 를 들 수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이 두 도성유적의 조영시기를 동진(東晉)시대로까지 앞당겨 본다. 여기서 출토된 전문토기들이 대개 그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장(鎭江)시에서 출토되어 현재 가장 중요한 물적 증거로 여겨지는 전문토기를 살펴보면, 그 연대를 동진 시대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들 유물에는 동진 시대를 앞서거나 뒤따르는 시기의 특징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중국식 전문토기는 현재까지 30점이 넘는데, 모두 크기가 50cm를 넘는다. 이 토기들은 어느 일정한 시기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뒤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끝내는 백제의 도성에 다다르게 되었다. 동진 왕조의 초기 환경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북쪽 오랑캐들과의 전쟁 위협에 더해 정부의 재건 문제, 귀족과 지역 토호들의 반란, 경제적 위기 등이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결국 동진 왕조는 한반도 남부와의 외교관계를 지속 또는 발전시킬 수 없게 되었다. 동진 시대의 중기와 말기를 대표하는 청자들도 한반도 내 여러 지역에서 계속 출토되는데, 아직까지 이보다 앞선 시기의 것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초기의 동진과 한반도 사이에는 교류가 없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서진(西晉) 시대에 중국 남부와 한반도 사이에 대규모 무역 교류가 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반도에 유입된 전문토기의 연대는 동오(東吳)시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동오는 위 왕조에 맞서 요동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한동안 요동의 지배 하에 있던 한반도 내 낙랑과도 교류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마 중국식 전문토기는 이 시기에 동오에서 한반도로 건너갔을 것이다. 동오의 멸망 후 중국 남부는 외국과 외교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힘을 잃고 말았고, 그로 인해 전문토기가 서진 왕조에서 한반도로 건너갈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던 것이다.

목차

Brief Instruction on the Issue
Reexamination on “East Asia”
There is No Possibility for Eastern Jin Dynasty
Conclusion
Abstract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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