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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胤珍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9호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1 - 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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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고려초 고승비문에는 승려의 師資관계를 부계 혈통 의식이 내포된 종법적 용어로 표현한 사례가 다수 등장한다. 즉 嚴君이나 令子ㆍ?子, 來孫과 같은 부계 혈통 용어와 本籍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종법적 표현 방식을 통해 자신의 계보를 서술하면서, ‘九山門’ 범주의 국내 계보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국내 스승과는 별개인 자신만의 중국 계보를 강조한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계보 중 선택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동일 산문, 동일 스승의 문도간에도 차이가 있어서 계보관이 동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산문 의식이 후대의 ‘구산문’과 같이 넓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국내 스승과 차이를 가지는 중국 계보를 자랑스럽게 드러낸 것은 중국 선종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했다.
한편 동일한 스승의 문하였던 승려들의 비문 검토를 통해서는 상호간 동문 의식이 거의 없었음도 확인하였다. 梵日의 제자였던 開淸과 行寂은비슷한 시기에 범일의 문하로 생활했는데도 불구하고 각자의 비에서 서로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승인 범일의 유일한 수제자로서 각자를 기술하고 있다. 이는 개청과 행적 본인뿐만 아니라 해당 고승비의 건립을 주도한 그들의 제자들 입장에서 고승비의 주인공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동문에 대한 서술을 회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들 세력의 번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산문의 구성원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역시 후대만큼의 산문 의식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고승비에는 스승과 버금갈 정도의 의미가 있는 승려를 ‘師兄’으로 언급할 뿐 수평적인 동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남종선의 초전자로서 道義의 위상은 ‘迦智山’만의 주장은 아니고, 『慧昭碑』와『道憲碑』에서도 이를 인정했고 이런 인식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도의를 신라 선종의 시조로서 표방한 내용이 도의의 손제자인 體澄碑에서는『禮記』?를 인용하여 중국 선종의 別子로서 우리나라 선종의 1祖가 되었다는 종법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도의의 위상은 眞空大師□運이 도의를 직접 만나지도 않은 채 그의 제자라고 자칭하게 한 원인이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중국 스승에 대한 계승 인식
Ⅱ. 門徒간의 상호 인식
Ⅲ. 신라 선종 시조에 대한 共有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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