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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정수 (건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14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 - 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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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 건국 후 전 왕실세력인 고려 왕씨를 어떻게 대우하며 처리하려 하였는가와 그 배경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먼저 태조 즉위 과정과 그 명분을 검토하고, 다음으로는 고려 왕씨에 대한 처분론의 대두와 그 방향을, 마지막으로는 大義에 입각한 결단을 반영한 王氏永節論의 적용과 그 전개를 정리하고자 하였다.
태조의 즉위는 자신들이 추대한 공양왕을 다시 폐하여야 한다는 면에서 명분이 약하였다. 그러나 태조 및 그 추대세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왕씨처분을 모색하였다. 하나는 前朝의 군주와 遺民들에 대해 일정지역에 국한하여 제후로 책봉하고 제사를 잇도록 하는 放置封建및 祭祀의 봉행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조의 왕실세력은 화란의 근원이 되므로 발본색원하여 誅殺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왕씨영절론이 이에 해당하였다. 태조는 즉위 후 고려 왕씨에 대해 封君하여 제사를 받들게 하고, 편한 대로 거처하도록 하는 德을 베풀었다. 하지만 태조추대세력은 우?창을 죽여 反正을 완성한 것처럼 왕씨들을 발본색원-주살하자 하였다. 결국 태조 역시도 주살영절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1394년 ‘甲戌之誅’가 발생하였다. 이 왕씨영절론은 태종 13년에 가서야 “왕씨의 후예로서 생존한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각각 생업에 안정하게 하라.”는 명이 내려지면서 그게 되었고, 고려왕조를 위한 제사시설인 崇義殿의 마련으로 귀결되었다. 명의 고명을 받은 태종 대에 주살영절론이 해제된 것으로 볼 때 왕씨 처분론의 전개는 태조 즉위와 조선 건국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방벌혁명을 행하였다는 대의명분의 완성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하겠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태조의 즉위과정과 명분
Ⅱ. 高麗 王氏處分論의 대두와 방향
Ⅲ. 王氏永絶論의 전개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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