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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현권 (문화재청)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49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65 - 10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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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懋(1741~1793)는 다양한 화목의 회화를 남겼던 화가이다. 그는 洛論의 天機論과 북학파의 寫生論이라는 창작론에 바탕을 둔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朱子學에 근거한 載道論이라는 기능론으로 예술의 효용성을 한정시켰다. 이러한 개념 중에 천기론과 재도론은 그가 북학파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개진하였는데, 그의 집안이 노론이라는 점과 이덕무가 김창협 집안의 후손과 가진 교유에 따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후 1768년경부터 이덕무는 박지원이나 박제가 등과 교유하면서 북학파로서 활동하였다. 이로써 그는 다양한 색목과 학맥의 士類나 서화가들과 교분을 가지게 되었고 북학파내의 사생론과 한중교류성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은 북학파가 사상적으로 유연하였고 庶孼許通을 지지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덕무는 1778년 3월에 燕行을 하여 四川 출신의 淸 문사들과 교분을 가졌다. 이러한 교분은 홍대용과 유금이 이룬 한중교류의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이덕무는 청의 소조를 조선의 초상화관으로 이해하는 등, 청 회화에 대한 이해가 넓지 않았으며 자신이 가졌던 회화관으로 청 회화를 바라보았다.
이덕무는 연행 이후에도 기존의 회화관을 유지하였다. 그러면서도 화훼조충도류에 대한 관심과 재도론적 사고의 상대적 감소 등,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는 당시 청에 고증학과 필묵이 강조된 산수화가 성행한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산수〉에서 소슬한 분위기를 내는 구성은 청대 회화 경향과 연결된다.
한편 〈산수〉는 이덕무의 전반적인 회화 경향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적당한 물기를 머금은 필치는 이인상의 필법을 연상시키며, 배경을 생략한 구도는 마치 김정희의 〈세한도〉나 〈고사소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노론 내에서 선호되었던 18세기 전반의 이인상 화풍과 19세기 전반의 김정희 화풍을 조형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요소를 갖고 있다. 즉, 이덕무는 박지원이나 박제가처럼 청의 학예 경향에 경도된 예술가가 아니라, 북학파 중에서 가장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가운데 청의 회화 경향을 조심스럽게 수용하였던 화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화가 이덕무
Ⅱ. 그를 둘러싼 외연
Ⅲ. 전통의 계승
Ⅳ. 淸 회화의 이해와 燕行
Ⅴ. 화풍과 의의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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