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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창겸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2호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215 - 24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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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 헌강왕과 그의 여인들, 그리고 효공왕의 즉위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전하는 자료에서 확인되는 헌강왕의 여인으로는 의명왕후, 수원 권씨, 요(효공왕)를 낳은 생모 김씨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효공왕의 생모는 왕족도 진골귀족도 아니었고, 게다가 헌강왕과 야합으로 아들 요를 낳았으나 궁궐 밖에서 키워야만 하였다. 또 효공왕은 즉위 후 자신의 생모가 아니라 헌강왕의 정식 왕비인 의명왕후를 의명왕태후로 책봉하였다.
신라 골품제의 원리에서 진골이 아닌 생모가 낳은 효공왕도 진골이 아니었다. 효공왕이 즉위한 것은 골법의 특이성이라는 왕실 혈통, 즉 오로지 왕족이라는 신성성만을 내세워 비상조치로써 이루어진 왕위계승이었다. 이것은 신라 왕위계승에서 오직 왕의 아들이라는 혈통의 신성성만 강조되고, 골품제 규정은 기능을 상실하고 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헌강왕과 비진골 김씨녀의 야합으로 출생한 효공왕의 즉위는 신라왕위계승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던 요인 중의 하나인 골품제 규정을 소멸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이었으며, 이는 골품제의 바탕 위에 존립하였던 김씨 신라왕조의 종말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憲康王의 가족 관계와 여인들
Ⅲ. 憲康王의 野合과 孝恭王의 生母
Ⅳ. 孝恭王의 卽位와 非眞骨王의 등장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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