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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인욱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4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219 - 26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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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중국과 정치ㆍ문화ㆍ경제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교류를 행하였다. 고려는 오대십국五代十國 가운데, 민?ㆍ오吳ㆍ남당南唐ㆍ오월吳越 등과 교류를 지속하였는데, 이 국가들은 중국의 서해와 남해안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십국 가운데서도 해로를 통해 비교적 접근이 손쉬운 지역들에 해당된다.
고려와 민의 사행 교환은 민이 존속한 기간이 짧으며, 고려의 안보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복건지역에 위치한 탓인지 정치적인 면모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오월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월의 경우에는 고려보다는 후백제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교류는 후백제가 멸망하는 937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고려와 민 또는 오월과의 관계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불교 교류가 왕성했다는 점이다. 민의 군주들은 저명한 선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사찰을 중수하거나 건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복건지역이 선종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점하였던 탓이었다. 민의 멸망후에는 복건의 일부지역을 차지한 오월 또한 불교진흥에 힘을 쏟아 불교가 매우 발달하였고, 고려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고려와 오ㆍ남당의 교류는 919년에 고려가 오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이루어졌다. 이후 고려는 이변李?이 오의 예제睿帝로부터 선양禪讓을 받아 남당을 건국하자 축하사절로 유훈률을 파견하였으며, 이후에도 매년 사신을 파견하며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후백제가 멸망하기 전까지 고려는 오ㆍ남당과의 외교를 통해, 후백제-오월의 관계를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려와 남중국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특징의 하나는 고려와 남당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등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고려는 황제에게 보내는 서식인 표表가 아닌 황태자에게 보내는 전箋을 보냈으며, 신臣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남당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대등한 국가임을 인정한 것인데, 여기에는 당시 고려를 강국으로 인식한 탓이 컸다. 이러한 태도는 오월과의 관계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고려가 대등한 입장에서 외교가 가능했던 것은 외부적으로는 중국이 오대십국으로 분열되어 있어 국제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이 나타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여기에 고려가 일본이나 제주도 그리고 만주지역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내부적인 자신감도 그러한 외교를 가능케 한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민?과의 교류
3. 오吳ㆍ남당南唐과의 교류
4. 오월吳越과의 교류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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