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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주수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9·280號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321 - 34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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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천강하”란 석가모니 붓다가 “사위성의 신변”을 보인 이후에 도리천에 올라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한 후, 다시 상키샤라는 도시로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한 도상이다. 이때 석가모니는 수많은 군중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보계(寶階)로 이루어진 세 개의 계단 중 가운데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그 좌우에서는 브라만과 인드라가 협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쿠샨시대의 마투라와 간다라 미술에서도 보이고, 굽타 미술에서도 그 사례가 확인된다.
한편 현장법사는 17년간의 인도 유학을 마치고 645년 중국으로 돌아오면서 7개의 불상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중에 도리천강하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간다라를 포함한 인도불교도상에 있어서 도리천강하상은 분명히 확인되는 도상이지만, 중국불교미술에서 도리천강하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에서 유행했었고, 분명히 현장이 중국에 전래한 도리천강하 도상이 중국에서 유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본 논문에서 추정하는 것은 그러한 도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지닌 채 동아시아 불교미술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서방극락정토변상도의 아미타내영 모티프가 그것이다.
우선 쿠샨시대의 도리천강하 장면은 주로 정면관으로 묘사되었지만, 아잔타 석굴 제17굴의 굽타시대벽화에 등장하는 도리천강하 장면은 반측면관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아마도 남인도 아마라바티 미술에 기원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도상은 시각적으로도 동아시아의 아미타내영도와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유사한 모티프는 초당시기의 돈황 막고굴 정토변상도에서 이미 등장하고 있다. 341굴, 321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특히 321굴의 내영 모티프에서는 붓다가 왼손으로 가사 자락을 붙잡고 있고, 그 아래로는 물결치듯이 내려오는 옷자락이 보이며, 오른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인도의 불입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티프인데, 도리천강하 도상에도 적용된 바 있다. 이는 이러한 모티프가 상당히 인도적 성격을 지닌 어떤 도상에서 유래된 것임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상의 전용은 임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사용되었다. 도리천강하와 아미타내영은 별개의 의미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공통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즉, 중생들이 간절히 원하면 다른 공간에 있던 붓다가 눈앞에 현현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교도상은 특정한 의미로만 전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상의 내재적 의미만 통한다면 다양한 형태로 전용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전용이 다양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도 전통적 도상이 생명력있게 계승될 수 있었던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도리천강하(?利天降下)’와 ‘아미타래영(阿彌陀來迎)’의 연관성
Ⅲ. 도리천강하 도상의 중국적 변용(變容)
Ⅳ. 도리천강하 도상의 확산(擴散)
Ⅴ. 도상 변용의 도상학적 의미
Ⅵ.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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