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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수연 (영동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3輯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93 - 237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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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지역은 서인 - 노론계의 宗匠인 尤庵 宋時烈이 학문적 ? 정치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던 지역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인근에 華陽書院과 萬東廟가 건립되어 노론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론계 세력확대에 반대하는 청주지역 남인 ? 소론계 사족에 의해 鄕戰이 일어났고, 1728년에는 남인 ? 소론 사족이 중심이 된 무신란 반란군에 의하여 청주성 점령까지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러한 청주지역 사족의 모습은 이른바 17세기 후반∼18세기의 2세대 사림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선 16∼17세기 전반 청주지역 1세대 사림은 2세대 사림과는 다르게 다양한 학풍을 수용하였고, 사족간의 다양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李潛? 李得胤 부자가 있었다. 이잠과 이득윤 부자의 학풍과 강학활동과 문인 양성은 첫째, 琅城八賢이라는 청주의 걸출한 학자군을 완성하게 했으며, 둘째 湖西左道에서 두 번째로 莘巷書院을 건립하게 했으며, 셋째 이득윤과 이잠의 청주 출신 문인 51명을 과거에 입격시켰던 것이다. 즉, 이잠과 이득윤 부자는 청주지역에 1세대 사림의 인물과 그 활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학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강학활동은 청주사림의 학문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득윤 사후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중앙의 정계에서 불어 닥친 당쟁의 영향으로 이잠과 이득윤 문인들은 分岐한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는 이득윤의 수제자인 李德洙와 송시열이 개입되어 있다. 즉, 노론의 신항서원 운영주도권 확보 노력, 각 당파의 서원 건립? 추향경쟁, 각종 향전으로 문인들이 대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후반에 이득윤의 문인과 그 후손은 철저히 당색으로 나뉘고, 이후 1728년 영조대 戊申亂이라는 격한 대립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무신란이 평정되면서 청주 지역의 학문, 사상사적 위상은 노론계가 중심이 되어 더욱 강화되고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李潛ㆍ李得胤 父子의 學風과 講學活動
Ⅲ. 이잠ㆍ이득윤 부자의 門人 構成과 分岐樣相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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